갑질일기 #6-1. 유럽 출장의 악몽 1탄

갑과 함께한 일주일

by heavenlyPD

❉'갑질일기'는 철저히 '을'의 관점에서 쓴 기록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를 배출하는 통로 역시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회사 돈으로 유럽을 간다니,

주변에선 부러움 폭발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하나도 들뜨지 않았다.


비행시간이 길어도 좋고,

낯선 현지에서 고생하는 것도 각오한 일이다.


문제는 단 하나.

'대접'의 의미도 모르는 갑님과

일주일을 붙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출발 전날,

긴장과 스트레스로 체했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클라이언트와 같은 비행기가 아니었다는 것.


하루 더 늦게 도착한다는 소식에

제작진끼리 서로 위로하며 말했다.


"그 사람 오기 전까지 즐깁시다!

도착하는 순간, 악몽 시작이니까"


그 시간이 다가오자

PD님은 시계를 보면서 카운트다운을 했다.


"8시간 남았어요...

7시간...6시간..."

sticker sticker




그리고 드디어,

그가 도착했다.


놀라운 건,

자기 회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가 아니라

굳~~~이 우리 숙소로 왔다는 것이다.


대표님 말씀으로는

출장비를 아끼려는 심산이란다.

(일부 사례일 뿐,

모든 대기업 직원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있는 놈들이 더하다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더 황당했던 건,

방이 모자라 제작진 중 한 명이

소파에서 자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우리 숙소에서 지내겠다고 한 거였다.


입으로는,

"저 때문에 소파에서 주무셔서 어떡해요..." 했지만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상황을 다 알면서도 왔으니까.


이건 지구를 넘어,

우주 최강 구타 유발자 아닌가!


주님, 저 인간은 양심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 게 분명합니다!




촬영이 시작되고

예상대로 현장은 변수가 많았다.


해외 촬영이라 더욱 그랬다.


이럴 땐 유연하게,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게 기본인데

그는 자기 뜻대로 안 될 때마다

곧장 짜증을 부렸다.


한국에서 하던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싶었지만,

그의 진상력은 낯선 곳에서 더 심해졌다.


정말 진상, 밉상, 화상!!!


촬영 중간에 잠시 커피 한 잔 마시며 숨 고르는데

그가 다가와 한 마디 내뱉었다.


"시간은 생각하고 여유 부리시는 거예요?

빨리 좀 움직이시죠"


종일 돌아다니다가

겨우 5분 엉덩이 붙였는데

그걸 못 참고 달려와 갑질을 한다.


입으로 나오면 다 말인 줄 아냐??


또, 자기 회사 CEO를 촬영 중인 감독님 팔을

"너무 가까이 가서 찍지 말라"며 잡아끄는

어이없는 행동을 하더니

나중에는 CEO 클로즈업이

왜 이렇게 없냐고 짜증을 내는 만행을!!!


지랄도 자세히 하면 범죄라더니,

이런 경우인가 싶었다.


하루 평균 2만 5천보.

몸은 이미 탈진 상태였다.


거기에 갑님의 널뛰는 감정까지 떠안으려니

제작진 모두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촬영 3일째.

그의 짜증과

우리를 향한 질책이 절정에 달았다.


하루 종일 제대로 못 먹었는데도

입맛까지 사라진 그날.


어김없이 숙소에서

PD는 편집을,

나는 대본을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굳이 저녁을 밖에서 먹자고 했다.


싫어도 거절하기 어려워 따라갔다.

저녁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제가 오늘 좀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아요.

근데 다 잘해보자고 하는 거 아시죠?"


순간,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걸 보면서 깨달았다.


'아, 이 사람에게 사과는

그저 면피용이구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다 함께 쇼핑을 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그는

아내와 처가 식구들 선물을 골랐다.


계산대 앞에서 대표님이 말했다.
“같이 계산하시죠.”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거절이 아니라는 걸
우린 다 알고 있었다.


결국,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기 물건을 우리 물건 옆에 올려놨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서

그의 처가 식구들 선물을
우리가 샀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허탈함에 웃음조차 안 나왔다.


대표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게 업계 관행이에요.”


그리고 덧붙였다.
“옛날 술자리 접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죠.”


그 말을 들은 순간,

예전에는 방송국 CP(책임 프로듀서)들이

회식을 핑계로 작가들을 술자리에 불러

술을 따르게 했던 때가 생각났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관행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기업에서는

접대를 당연하게 여긴다고 들었다.


그래서 프로덕션 대표들이

그들을 “예쁜 언니들”이 있는

술집에 데려간다는 것이다.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관행이 남아 있다니…

참담할 따름이다.


이 현실을 살아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같은 ‘을’이라도,

편들어 줄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나의 기도는 더 간절해진다.


"주님... 세상이 원하는 방식이나 방향이 아닌,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용기.

그 용기가 제게 있어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음 편 예고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겨우 대본을 마무리했을 때

그가 던진 한 마디는

내 분노 버튼을 정확히 눌렀다.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간 회식 자리.


거기서 빌런 서사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그의 말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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