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아프다
❉'갑질일기'는 철저히 '을'의 관점에서 쓴 기록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를 배출하는 통로 역시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으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피드백과 지적의 차이,
뭘까?
포털에 검색해 봤다.
간단히 정리하면,
*피드백 :
상대의 개선과 성장을 돕기 위한 정보 제공.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지적 :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꼭 집어 가리킴.
위계적 뉘앙스를 띠고, 종종 부정적으로 다가옴.
단어 뜻은 명확한데
막상 들으면 헷갈린다.
피드백인지, 지적인지
작가에게 피드백이 숙명이라면,
클라이언트에게는 의무이자 책임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클라이언트의 성격이나 일하는 스타일에 따라
피드백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대본에 빨간펜을 잔뜩 긋는 사람
수정할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는 사람
전화를 걸어 한 줄씩 읽으며
'이건 이렇게요', '저건 저렇게요'
설명하는 사람.
그리고 하루 종~~~ 일
몇 시간 간격으로 찔끔찔끔 던지는 사람.
새 모이 주듯 아주 조금씩.
이런 사람도 있다.
"왜 이런 표현을 쓰셨어요?"
"근거가 뭐예요"
"뭘 보고 쓰신 거죠?"
통계, 수치 같은 건 당연히 출처를 밝히지만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내용들도 있다.
그런데 굳~~ 이 참고한 걸
하나하나 캐묻는다.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형사가 범인 취조하듯이.
그리고 이 모든 유형을 두루 갖춘
육각형(?) 클라이언트가 있다.
바로 그 최강 빌런이다
이 정도면 정말 다 가진 자다.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대단한(?) 인간!
어떤 면에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여기서 더 최악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
최강 빌런의 피드백은
저녁도, 주말도 가리지 않는다.
내일 해도 되고,
월요일 출근해서 해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이건 명백히 '직장 내 갑질'이다
그의 피드백은
처음에는 별 감정 없이 듣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근데, 이거 피드백 맞아?"
피드백이라 쓰고,
지적이라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러다 보면,
나도 친절하게 답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면 또 이렇게 말한다.
"작가님, 저는 제 의견을 말씀드린 거고,
작가님 생각이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지적하거나 질책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럴 의도가 전~~~ 혀 없다면서
왜 그렇게 집요하고,
왜 그렇게 반복적이고,
왜 톤 앤 매너는 늘 저럴까.
그리고 마지막에 꼭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작가님은
왜 제가 잘못을 지적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은 잊을만하면 툭 튀어나온다.
무슨 분기별 보고서도 아니고.
사실, 오해라는 말은
이젠 그냥 그러려니 넘긴다.
하지만 나를 화나게 하는 건,
그가 왜 내가 그렇게 느끼는지 모른다는 거다.
정녕 니 자신을 모른단 말이냐~~~~라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꾹 참고 '알겠습니다' 한다.
말을 삼킨 자리엔
상처가 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그 빌런 한 사람 때문에
내 일을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요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도가 없다는데
왜 나는 자꾸 '지적'으로 받아들일까"
분명 그는 지적하는 게 맞다.
피드백이 아니라.
하지만 그의 태도와 별개로
나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그 끝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했다.
나는 상상하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황당하거나 허황된 것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상상하기도,
말하기도 멈춰버렸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그건 잘못됐다'는 뉘앙스만 풍기면
어린 시절의 내가 자동으로 소환된다.
그리고 나는
움츠러들고, 작아진다.
최강빌런의 피드백이 지적으로 들리는 건,
그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 오랜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아서
지적이 아니어도
지적처럼 들리는
내 마음 탓이기도 하다.
피드백은 분명히 필요하다.
일에서도, 삶에서도.
하지만 지적은 아프다.
그리고 나는 그 아픔에
아직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도 감사한 건,
그 아픔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조금 생긴 것이다.
그래서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왜 건강하게 반응하지 못하는지
이젠 안다.
아니, 인정한다.
모든 치유는
그 상처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젠 바란다.
언젠가
상처로 인해
굳어진 마음의 살들이
부드러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