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일기 #21. 연속된 기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by heavenlyPD

❉'갑질일기'는 철저히 '을'의 관점에서 쓴 기록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를 배출하는 통로 역시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으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배제되는 일을 겪고

이틀이 지났다.


다른 프로덕션 피디님께 전화가 왔다.


8년째 같은 기업 일을 함께 해 오면서

매년 사업 수주를 위한 기획안을

피디님 하나, 나 하나 나눠서 작업해 왔다.


그런데 이번엔,

"작가님, 늘 작업하셨던 것처럼

기획안 두 개 작성해 주시면 돼요"라고 말했다.


으잉?

내 기억이 잘못됐나...?


확인해 보니,

내 기억이 맞았다.


게다가

기획안은 원래 하나만

제출해도 되는 구조였다는 걸

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나는 그동안

최종 기획안을 보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두 개를 제출했으려니 믿었으니까.


그냥 처음부터 솔직하게,

"작가님, 이번엔 두 개 작성 가능하실까요?

성공 확률을 좀 높이고 싶어서요"

이렇게 말하면 될 일이었다.


처음엔 배제를 당하더니

이번엔 거짓말이다.


대체 왜들 이럴까.


함께 한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데...

아니면, 지금까지 늘 이런 식이었는데

나만 몰랐던 걸까.


원치 않은 의심이

조금씩 내 안에서

고개를 든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한다면

내가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내가 한 발 물러서는 게 낫다고.


꼬치꼬치 따지기 보다

그냥 믿어주자고.


나의 신뢰를 너무 쉽게 내준 거,

그게 잘못된 거였을까?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하게 요구하고

더 따지고

더 싸워야 했던 걸까.


물론, 내가 속이기 쉬운 상대여서

그 오랜 시간 나와 일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없었다면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테니까.




응어리는 아직 다 풀리지 않았다.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러니 지금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슬프면 울기로 하자.


하지만 그 감정에

오래 머물진 않을 거다.


자기 연민이

얼마나 큰 시간 낭비인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배웠으니까.




앞으로도 모든 기만을

다 알아차릴 순 없을 거다.


그렇다고

매번 의심의 눈초리로

사람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하나,

이제는 맘 놓고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방법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기도하기로 하자.

부족한 내게 지혜를 달라고.


지금은

그렇게 하자.


아직은 많이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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