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뭔지를 안다는 것과, 소주를 이해한다는 것
태초에 배운 단어는 엄마가 아니었다. 언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온몸으로 받아들인 이해한 것은 "아프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로 울부짖었던 단어 "무서워요"였다. 그 아무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무력하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바라봤던 천장 속에는 계속해서 흐릿한 얼굴들이 나를 들어올렸고, 만져댔다. 끊임없이 아프다고 무섭다고 소리쳤지만 날 만져대는 이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들은 나를 언제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것은 통증과 공포로 다가오는 무엇이었다.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찌하지 못한채 나의 선을 침범해오는 아픔과 무서움을 견뎌내야 일이었다. 유달리 아팠던 그 시절의 기억들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지워버린 듯,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었던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곤 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같았다. 어린시절의 유약했던 나는 이제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지킬 수 있으니, 지나간 시간은 나를 더 이상 괴롭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아무래도 기억이 선명한건 그나마 중학교 2학년 이후 즈음이다.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 지독한 입시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 하던 때였다. 모두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놀러가 텅 빈 학교 도서관에서 몇 안되는 고3들과 남아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듯 두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깊은 숨을 내뱉었다. 흠칫 놀랐다. 담배를 혐오한다고 믿었던 내가 왜 그 연기 없는 호흡을 흉내 내고 있었을까.
가정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담배는 사실 '깊은 호흡'이 필요해서 피우는 거라고. 어쩌면 그때의 나는 내 호흡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불안과 경쟁에 쫓겨 짧아진 숨을, 어떻게든 길게 늘려보려는 본능적인 발버둥이었다. 나는 끌려가는 것처럼 우울한 표정을 한 채 다시 도서관에 나를 밀어넣었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나를 닥달하며 버틴 3년 동안 나는 핑핑 도는 땅을 부여 잡기 위해 정신과 약을 먹었다. 3년 내내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소화가 안돼 점심마다 도시락에 싸온 죽을 먹어야 했다. 매일 순수공부 시간을 체크했고, 아침 6시에 도서관 자리를 잡기위해 줄을 섰다. 그렇게도 아둥바둥 노력했지만 노력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았고, 내 기대와는 다른 수능 가채점지를 받아들었다.
그날 나는 엄마와 함께 난생 처음 소주를 마셨고 한 번에 단맛을 이해했다. 어른들은 소주가 달면 어른이 된 거라 했지만, 나는 어른이란 뭔지 알아내는데 4-5년은 더 걸렸다. 술을 이해하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었고 나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구분하지 몰랐다.
나는 세계를 먼저 이해해야 했다. 내게 주어진 세계, 내게 가해지는 학대와 폭력들을 이해하고자 애썼다. 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때리다가 다시 내게 품을 내주는지. 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학교에서 맞았을 때 나를 위해 학교로 달려와주지 않는지,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나를 알아가는 건 여전히 어렵다. 여전히 어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잘 못하겠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답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게 됐다. 한 번 일어난 일은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 없고, 내게 일어난 일들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이제는 소주잔을 빌리지 않고 나를 들여다 볼 시간이다. 원망하고 세계가 나를 이해해주길 요청할 시간이다. 마음껏 울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