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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무요 Apr 17. 2022

03. 지금의 가상 패션이 미래일까.

가상 패션은 작금의 패션 업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가상현실 패션은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인 미래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들은 증명해내었는가. 공간적 제약을 그들은 진실로 해결하는 중인가. 정말 우리는 가상현실을 통해 기존의 온라인 쇼핑과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받을 수 있을까. 메타버스에서 옷을 입고 소비하는 경험은 현실 그 이상을 제공할까.


글쎄, 나는 가상 패션이 관찰자의 시선에서 디자인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패션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입는 사람의 몸보다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해오면서 패션은 미적 가치를 지닌 아카이브를 꾸준히 쌓아왔지만, 반대편에서 산업적 문제들도 꾸준히 야기해왔다. 근래에 와서야 착용자를 고려하는 움직임들이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는 듯 하지만, 역시 이제 시작이다. 옷의 주인을 감상자가 아닌 착용자로 전환해야 하는 이 시기에, 지금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가상세계 속 패션은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옷은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입는'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 여기에 감각의 영역에서 나아가 근육의 움직임, 옷이 보장하는 활동성, 우리 몸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심지어 우리가 눈으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상 세계로 불러올 수 없다면 가상 세계에서 럭셔리 하우스의 이름은 지금과 같은 지위와 가치를 유지할지 의문이다. 기술에 의해 더 복제가 용이할 테고, 당연히 더 구분이 힘들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사실 구분할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다 프로그램 내지 코드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 '바라보기 - 입기'로 돌아가자면 단적으로 옷은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다. 즉 감상하기만 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https://www.louvre.fr/en/online-tours와 Rue de Rivoli, 75001 Paris, France 중 어디를 더 방문하고 싶어 하는가. 감상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상황에서, 촉각까지 고려해야 하고, 사람 곁에 늘 붙어있는 사용의 영역에서는 어떠할까. 오큘러스 따위의 도구가 앞으로 인간에게 안경의 역할을 할지, 스마트폰 스크린 정도에 불과할지는 앞으로 조금 더 지켜봐야 하고, 상황이 바뀔 여지가 있다. 어찌 되었건 핵심은 옷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복잡하다.

옷을 정말 입어야 해서 입는 사람을 제외하고,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옷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루 종일 옷만 쳐다보다가 옷을 바라만 보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가상세계에서조차 바라보는 옷만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납득하기가 쉽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입는' 옷으로 나아가야 하고, 가상세계 속에서 입는 옷은 갈 길이 한참이다.

입어봐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디자이너들처럼 원단을 따지고 기능과 마감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일상에서 인지를 안 하고 있을 뿐, 사람들은 이미 축적된 경험들을 바탕으로 옷을 입는 순간 피부로 느껴지는 촉감이라던지 자신의 움직임과 옷의 움직임이 잘 어울리는지 등을 판단한다. 단순하게 이 옷은 나랑 잘 안 맞네 정도로 정리되긴 하지만, 그 한 마디에는 앞서 언급한 판단과 결정들이 내포되어있다. 즉 입을 옷을 결정할 때는 신체가 직접 감응할 - 설령 본인이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 기회를 주어야 한다.

눈속임만 한 채로 가상 세계에서 입어보는 행위를 구현한다고 한들, 그것은 하는 척에 불과하다. 몸이 직접 옷과 만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촉감까지 속일 수는 없다. 결국에는 기술이 이것조차도 해결하리라 믿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가상 세계의 방식으로 몸과 옷 사이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눈으로 입을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음모론적인 공상까지 이른다. 사람들이 직접 옷을 입어볼 수 없다, 즉 지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체와 무관하게 옷을 인식만 할수록 무분별한 소비는 촉진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쉽게 지워내기가 힘들다. 옷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실시간으로 유행이 변화하는 이 세계에서는 객관적인 판단도 실시간으로 변한다. 나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초 단위로 새롭게 결정되는 유행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이 업계에서 유행을 좇는다는 건 보통 새로운 소비를 뜻한다.


역시 우리는 화면이나  외부의 개입 없이 우리 몸을 통해 옷과 직접 접촉해야 한다. 가상현실은 단지 이 접촉을 하는 데 있어서 물리적 제약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Farfetch의 역할과(심지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무엇이 다를지 의문이다. 지금 패션산업이 가상현실을 활용하는 양상은 옷의 근본적인 특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듯하다. 이러한 흐름이 우리의 미래라면 우리는 조만간 '옷'을 대체할 새로운 언어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박무요

朴無要


instagram@parkmu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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