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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Sep 05. 2023

주저하는 우리를 위해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마트, 편의점에 있는 저렴한 와인들

편하게 소개해주는 글 한 번 써보면 어때?

네가 소개해주면 어렵지 않고 편하던데.”


주제를 정할 수 없는,

그래서 더 즐거운 친구들과의 잡담 중에,

친구 K가 툭 던진 말이다.

이어 또 다른 친구 L이 무심하게 툭 한 마디 보탠다.


“뭐 다른 건 몰라도 네가 추천해 준 와인은

다 내 취향엔 맞더라.”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이만 원대 와인만 주구장창 마시는 내가

그럴 깜냥이 되겠냐며 웃으며 농담으로 치부하는

나에게 친구 J가 진지한 말투로 쐐기를 박는다.


“나는 네가 그냥 개인 공간에서 와인으로 소소하게

글 써보면 좋겠다.”


직장에서 임원으로 있는 J가 진지하게 말을 하면

왠지 모르게 그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위압감이 든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확신을 주었을까.

직장일과 육아에 지친 이들에게

한 번 피식 웃기라도 하라고 몇 번 써서 보낸

짤막한 글들이 이들의 눈과 귀를 가린 것일까.


순진한 녀석들.

친한 친구가 쓴 글이니 재밌었다는 걸 모르고,

친구의 재능을 과대평가하는 우를 범하다니.

이런 천사 같은 녀석들.

녀석들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떠올려보니

입가에 미소가 씨익 지어진다.


아닌가. 아니다. 이들이 그럴 이들이 아니지.

몇 년을, 아닌 몇 십 년을 봐온 녀석들인데.

단체로 짠 건가. 진짜 글을 써서 읽으라고 보내주면,

진짜로 썼냐며 박장대소하며 앞으로 수년간은

맥락도 없이 대화 중에 불쑥 이 일을 언급하며

만능 웃음벨로 써먹으려 하는 건가.

이런 악마 같은 녀석들.

녀석들의 영악한 얼굴을 떠올려보니

등에 식은땀이 주룩 흐른다.


그러고 대화는 다시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흘러갔지만, 이들이 살짝 내 마음에 심어 놓은

씨앗은 점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저렴한

와인들을 편하게 소개하는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지 않을까?’

‘뭐 거창한 것도 아니고 끽해야 진짜 썼냐며

엄청 웃겠지만, 뭐 그건 그대로 나쁘지 않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요즘 시간이 너무 많잖아.’


이런 전차로 어린 작가가 새로 와인 이야기를

쓰고 져 하니, 독자제위는 이랄 어엿비너겨

날로 읽으매…


쓰기로 했으니, 써야 하는데…

당최 제목은 뭐로 하고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하나.

괜히 시작했나. 아니지, 그래도 써 보기로 했는데

한 편이라도 써봐야지.


오만가지 잡생각과 함께 ‘쓰지 말까 Vs. 써보자’의

대결이 머릿속에서 난투를 벌인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음


랜덤으로 재생해 놓은,

언제 세팅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플레이리스트에서 마침, 딱, 이 노래가 나온다.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피 터지는 난투극을 잠시

잊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보컬의 고운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리다 손가락이 자판 위로 올라간다.


‘어라? 이거네?’


이렇게 도입부의 시작뿐 아니라,

1화의 제목까지 풀려버렸다.


여유가 생기니 쓸데없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만약 2화를 쓰게 된다면…이런 운 좋은 상황이

2화에서도 이어질까?’


사치다.

2화의 제목과 시작은 2화를 쓰게 되면

그때 고민하면 될 터, 지금은 1화의 시작과 제목이

정해졌다는 기쁨을 오롯이 만끽하기로 하자.  




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픽업을 바라는

와인의 마음이 딱 저 정도이면 되지 않을까.

마냥 어렵고, 선뜻 시작하기 쉽지 않은 술이 아니라,

당신이 스윽 훑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쉽고 편안한 술이라는 거.


일에서 든 일상에서 든, 우정에서 든 사랑에서 든…

당신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라는 거. 딱 이 정도.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한 가지 미리 밝혀 둘 것이 있다.

5대 샤또는커녕, 와인 한 병 가격이 5만 원만

넘어가도 손이 떨려 구매를 망설이다 2만 원짜리

와인 3병을 사서 나오며

‘그래, 3병이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잖아.’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저렴한 와인 애호가임을.


즉, 어려운 질문이나 고가의 와인에 대한 궁금증은

대부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실망스럽겠지만 그런 부분은 전문 소믈리에나

당신 주변의 가장 부유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들도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는 것,

아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와인은 경험의 술이며,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종류는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숫자에 100 아니 1,000을

곱한 수 보다 더 많다는 데 내 손목을…

아니 더 많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당신이 부디 하루라도 일찍 입문해서

한 병이라도 더 다양한 와인을 마실 수 있기를!


아니, 그래서 와인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시작되냐고 물어보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제2화 당신만의 헛간’에서 본격적인 와인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고.

이렇게 은근슬쩍 2화의 제목과 시작이

정해지는 걸 보니, 역시 운이 좋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런 행운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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