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물과 사람이 뒤바뀐 세계

알바_자멸로 이끄는

by 박나비

- 지이잉

나무 벽의 일부분이 뒤로 밀려나더니 미끄러지듯 옆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가고도 남을 충분한 공간이 남자의 앞에 드러났다. 벽인 줄로만 생각하고 있던 곳에서 문이 나타나자 남자는 당황하여 인사팀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인사팀장은 말없이 웃으며 남자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듯 문 안쪽을 향해 손을 펼쳤다. 남자는 당황스러움과 궁금함, 두려움과 설렘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무언가에 홀린 듯 비밀의 문 너머로 걸어 들어갔다. 5미터 정도 직진을 하자 복도는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남자의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돌았을 때 남자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11. 사물과 사람이 뒤바뀐 세계


- 아...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을 둘러보며 신음과도 같은 탄성을 질렀다. 남자가 들어선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지금 남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모든 벽을 허물어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도 이 공간보다는 작을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조명의 톤은 낮았지만 바깥 복도보다는 조금 밝은 편이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왕관 모양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사방 벽에 장식처럼 설치되어 있는 촛대 모양의 조명등이 아주 약간 힘을 보태고 있는 구조다.


공간의 주변부에 대한 탐색이 끝나자 이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로 시선이 옮겨갔다. 가장 먼저 공간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벨벳 재질의 녹색 소파가 남자의 시선을 끌었다. 덩치가 큰 성인 남자 5명도 충분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긴 소파와 똑같은 재질과 디자인이지만 한 명만 앉을 수 있는 1인용 소파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넓은 공간에 독특한 컬러와 재질의 커다란 소파를 보자 남자는 예전에 보았던 공연장의 피아노가 떠올랐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피아노 공연인데 자리 좀 채워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면 그냥 건너뛰어도 될 것 같은데 이런 오지랖을 부리냐며 투덜투덜거렸지만 막상 공연장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을 때 남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우 기이한 감각의 세계를 경험했다. 사물과 사람이 뒤바뀐 세계.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가 사물 같았고, 공허의 공간에 놓여 있는 피아노가 사람인 것 같은 세계. 천장의 스포트라이트는 피아니스트를 비추고 있었지만 남자의 눈에 피아니스트는 배경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스포트라이트는 피아노를 비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을 불현듯 지금 이 공간의 녹색 소파를 보면서 느끼는 남자였다.


소파의 앞에는 고풍스러운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바깥 복도의 나무벽과 같은 색의 테이블은 커다란 녹색 벨벳 소파와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테이블 모서리에 조각되어 있는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삼각형 모양의 무늬가 테이블 상단을 빙 둘러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엔 마치 신화 속 용의 비늘 같아 보였다.


색감, 재질, 디자인, 크기.

사물의 외관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면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소파와 테이블은 가구나 인테리어를 잘 모르는 남자가 봐도 상당히 고가로 보였다.


낮은 조도의 조명,

어두운 색감의 바닥과 벽.

고풍스럽고 특이한 디자인의 소파와 테이블,

왕관 모양의 거대한 샹들리에와 촛대 모양의 등.

낯설고 이질적인 이 모든 것들이 기이한 조화를 이루며 방안에 들어선 남자에게 묘한 위압감을 주었다. 하지만, 공간이 주는 위압감의 정점은 강렬한 색감의 녹색 벨벳 소파도 용의 비늘 같아 보이는 인상적인 문양의 테이블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소파와 마주 보는 벽에 걸려있는 거대한 크기의 액자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 액자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의 크기는 너무나 거대해서 마치 벽전체가 그림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