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_자멸로 이끄는
아…
남자는 속으로 실수를 자책하며 허둥지둥 오른손을 뻗어 여자의 손을 잡았다. 매력적인 모습과 에너지가 넘치는 분위기와는 달리 여자의 손은 아주 차가웠다.
14. 비밀유지서약
“… 대략적인 설명은 이 정도로 끝내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저희 클라이언트 분들이 대부분 정재계를 비롯 각계각층의 유력자분들이십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 분들 성향이 전담 컨설턴트에 매우 민감하세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컨설턴트라 해도 이 분들의 성향에 어긋나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저희가 하는 일이 일반적인 컨설팅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최상단에 계신 분들의 개인 교사가 되어주시는 일이랄까요? 이건 한 번 일을 맡아보시면 어떤 의미인지 이해되실 겁니다. 아, 물론 지금 당장 결정하시란 얘기는 아닙니다. 뭐 그렇다고 저희도 무한정 기다려드릴 수는 없고.. 음… 박팀장님 다음 주까지는 괜찮지 않을까요?”
일에 대한 설명을 시작할 때부터 내내 남자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이진경 대표가 처음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대표의 눈을 마주 보며 인사팀장이 입을 열었다.
“네 대표님. 다음 주까지는 무리 없습니다. 물론 빠를수록 좋긴 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몇몇 프로젝트는 원 일정보다 딜레이가 된 상황이라..”
“오케이. 그럼 다음 주까지 생각해 보시는 걸로 하시죠. 그리고 이런 얘기 따로 안 드려도 되는 분이라는 거 잘 알고 있지만, 저희 일이 또 이렇다 보니.. 오늘 보고 들으신 내용은 절대 대외비입니다. 혹시 오늘 이후 외부에 저희 회사에 관한 얘기가 돈다면…”
“대표님과 팀장님께서 외부에 밝히지 않으신다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남자의 단호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진경 대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일정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박팀장님, 마무리해 주세요.”
인사팀장에게 마무리를 당부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진경 대표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남자도 당황하지 않고 이진경 대표의 눈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내밀어 손을 잡았다.
“좋은 결정 기대하겠습니다.”
“네, 면접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진경 대표가 나가자 인사팀장이 남자에게 펜과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오늘 인터뷰 건에 대한 비밀유지서약서입니다. 아까 대표님도 말씀하셨지만, 저희 쪽 클라이언트분들이 이런 쪽에 특히 민감하셔서 어쩔 수 없네요. 뭐, 별 다른 내용은 아닙니다. 한 번 읽어보시고 아래쪽에 사인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인사팀장이 상의 안주머니에서 짙은 남색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막 건네받은 서류를 읽어보려던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인사팀장을 바라보았다.
“아, 오늘 면접비입니다. 비밀유지서약도 그렇고 여러모로 다른 곳들보다 조금.. 번거로우셨을 겁니다. 그래서 인터뷰 대상자분들께 그에 대한 사례로 지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인사팀장의 말에 남자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다시 서류를 살펴보았다. 잠시 서류를 훑어본 뒤 하단에 사인을 하고 인사팀장에게 건넸다. 테이블 한쪽에 놓인 봉투를 힐끗 바라본 남자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상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 *
28층 전용 엘리베이터 앞.
층을 알리는 안내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남자가 인사팀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목례를 받은 인사팀장도 남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도 좋은 결정 기다리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남자의 어정쩡한 대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고, 남자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침잠하듯 고속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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