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화분 속 꽃
출근길 길목에는 꽃 상가가 있어 지날 때마다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한 줄로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꽃과 나무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유혹한다.
모양과 색깔이 제 각각인 데다, 같은 종류라도 저마다 자태가 다르다.
그 홀릴듯한 자태에 취해 걷다 보면 발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어디 하나 손댈 곳 없는 완벽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제멋대로 자라난 날 것의 초록도 있다.
그 개성 강한 친구들은 대개 주인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엄마가 등굣길에 아이의 머리를 묶고 땋아주거나,
양 볼에 로션을 듬뿍 발라 단장을 해주는 것처럼,
주인은 꽃들에게 약간의 ‘성형 수술’을 집도한다.
꽃대를 바르고 곧게 다듬어서 보정을 해주거나,
삐뚤어지게 나온 꽃 얼굴이나, 거친 가지를 완전히 제거한다.
본래의 모습 그대로는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듯,
예쁘고 단정해야 먼저 팔린다는 세상의 논리 앞에
꽃들은 성형의 아픔을 감내한다.
그 아름다운 자태 뒤에 숨은 아픔의 흔적을 보니 애처로운 마음마저 든다.
향기와 자태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회사 앞이다.
9시 정각이 시작인 사무실에는 8시 20분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제일 멀리 사는 직원들이 제일 먼저 도착해 있다.
히터로 차가운 사무실에게 온기를 입히고,
커피포트에 뜨거운 물을 잔뜩 끓여 놓으며 하루를 준비한다.
집이 먼 순서대로 자리를 채우는 모습에
오늘은 ‘픽ㅡ’ 하고 웃음이 났다.
가까이 사는 사람은 여유 부리다 늦고, 멀리 사는 사람은 일찍 일어나
부지런해지는 아이러니.
인생도 비슷한가 보다.
목표가 멀수록 더 일찍 움직이게 된다.
직원들은 어느새 각자의 책상에서 오늘의 일들을 맞이한다.
매일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건과 사고가 있는
우리의 업무는 언제나 다이내믹하게 돌아간다.
지루한 걸 못 참는 내가 이 일을 20년이나 버틴 이유이기도 하다.
아침에 본 꽃 상가의 꽃들처럼,
오늘따라 직원들도 저마다의 꽃대를 세우고 앉아 있는 듯 보인다.
회사라는 공간에 놓이기 위해 누군가는 성격의 모난 부분을 깎아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본래의 야생성을 억누른 채 단정한 꽃얼굴만 내밀고 있을 것이다.
상품이 되기 위한 꽃들처럼, 우리도 ‘사회인’이라는 이름의 단정한 꽃이 되기 위해
각자의 아픔을 견디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아닐까.
오늘도 정해진 화분(책상) 안에서 꼿꼿하게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
오늘은 그들의 삐져나온 가지를 타박하기보다,
곧게 서 있으려 애쓰는 그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싶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의 눈에는 삐뚤어진 가지처럼 보이겠지?’
그래, 그럼 오늘은 서로의 삐뚤어진 가지를 귀엽다고 봐주는 날로 하자.
어차피 우리, 완벽한 꽃은 아니니까.
가끔은 삐뚤어진 게 더 개성 있고 매력적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