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검은 아대를 차고 책을 읽는 여자

지하철 풍경

by 박노아



휴대폰이 없을 때마다 글을 쓰게 되나 보다. 주머니, 가방을 뒤적거리다 안 보이면 바로 포기하게 된다. 불안함은 잠시였고, 곧 무료함이 찾아왔다. 할 일이 없어지니 평소라면 보지 않았을 앞사람들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시선이 닿은 곳은 짝다리를 짚고 선 중년 남성이다.

통이 넓은 브라운 기지바지는 헐렁하지만 말끔하게 다림질되어 있었다.

구두 대신 신은 흰 운동화와 흰 양말.

패션의 공식보다는 본인의 편안함을 선택한 50대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 옆에는 하얀색 짧은 주름치마에 검정 롱부츠를 신은 20대 여성이 서 있다.

오늘을 위해 단단히 신경 쓴 듯한 옷차림.

곧은 자세와 찰랑이는 머릿결에서 젊음의 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독 내 눈을 사로잡은 한 사람이 있었다.



하얀 얼굴의 그녀는 한 손으로 지하철 기둥을 잡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동그랗고 까만 안경테 너머로 활자에 집중한 눈빛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책을 받친 손목에는 검은색 아대가 채워져 있었다.



요가나 운동을 열심히 한 탓일까?

아니면 나처럼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손목이 시큰거려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를 짠함과 동질감이 스쳐 지나갔다.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검정 고무줄, 검정 가방, 검정 바지와 구두...

패션을 고려했다기보다는 어디에 섞여도 튀지 않으려는

무난하고 차분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화려하지 않은 그녀가 내 눈에 콕 박힌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의 푸른빛을 쬐고 있는 지하철 5-4칸.

그곳에서 오직 그녀만이 반듯한 자세로 서서 종이책을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이 조용한 독서가와 함께 출근한다.

그녀의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나의 출근길도 조금 더 근사해지는 기분이다.




당신은 지하철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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