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는 아침이 내게 준 두 가지 선물
새벽 5시 30분. 알람 소리에 얕은 잠이 깼다. 맑은 기상음을 뒤로하고 다시 꿈나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수차례. 허리를 좌우로 대여섯 번 돌려주며 서서히 몸을 깨운다.
"와!! 또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었다!!"... 같은 드라마틱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여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먼저 욕실에 가서 마른입을 헹구어 낸다. 거울 속의 나에게 눈을 맞추고 살짝 미소도 보내준다
"크크."
소리 내어 웃으면 입꼬리가 올라가 예뻐진다고 해서 추가한 동작이다.
머리를 빗어 정신을 깨운다. 정수기로 가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반씩 섞은 '음양탕'을 한 잔 마신다. (아이들은 질색을 한다. 음양탕은 민간요법이라 효과가 없다면서 하하)
비로소,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따라 유독 부지런을 떤 이유는 어젯밤 절여놓았던 백김치 때문이었다.
블로그 레시피를 보며 재료를 넣고, 간을 맞추고, 사진과 제법 비슷하게 연출까지 마쳤다.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까지 치우는 여유를 부리며 가볍게 집을 나섰다.
수능 날 아침이라 그런지 공기마저 차분했다. 왠지 지하철역까지 걷고 싶었다.
마을버스를 타면 6분이지만, 걸으면 15분 정도 걸리는 길. 나는 호기롭게 도보 출근을 택했다.
그런데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 섰을 때였다. 뭔가 허전하다. 가방을 뒤져보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아뿔싸!!"
휴대폰이 없다.
생각해 보니 백김치 레시피를 보느라 딸아이 방 충전기에 꽂아두고 온 게 화근이었다. 주방과 가장 가까운 콘센트를 찾았던 나의 치밀함이 독이 될 줄이야. 지금 돌아갔다가는 지각이 뻔하다. 어쩌겠는가. 몸만 가는 수밖에.
나의 출근 시간은 1시간을 살짝 넘는다.
이미 열차는 출발했고, 나는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화면 속 세상에 열중하고 있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난 탓인지 스멀스멀 잠이 쏟아진다. 하지만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지하철에서 잠들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잠도 깰 겸 기도를 시작했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이웃을 떠올리고,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 스마트폰이 없으니 오히려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영성으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회사에 도착해 부서원들에게 선포했다.
"나 오늘 휴대폰 두고 왔어요. 연락 안 돼도 놀라지 마세요."
다들 하루가 길고 답답하겠다며, 집에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해 주었다.
오전 업무가 한창이던 그때였다.
"똑똑."
작고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빼꼼히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나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어?? 네가 웬일이니?" 나의 아들이었다.
"엄마, 핸드폰 두고 가셔서 가져다 드리려고요."
주머니에서 꺼내 건네는 휴대폰이 마치 깜짝 선물 같았다. 아들은 대학원 진학 공부로 한창 바쁠 때다.
부탁할 생각조차 못 했는데, 이 먼 곳까지 직접 오다니.
건너편 직원이 한마디 거든다.
"아드님이 직접 가져다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대단하네요."
그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고마운 녀석. 집에 가면 백김치랑 맛있는 밥 차려주고 칭찬을 듬뿍 해줘야지. 고마워
빈손으로 덜렁대며 나섰던 출근길이었지만, 돌아보니 그 길은 가족의 사랑과 감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