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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멀 Jun 12. 2024

IT기업의 문과출신 마케터, 성과가 좋을 수밖에!

나의 성과,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나는 10여 년간 IT기업 두 군데에 몸담았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음에도 금세 부사장의 눈에 들었다. 부사장은 얼마 후 사장으로 승진하게 되었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봐, 박대리가 하는 일은 무조건 다 지원할게'라는, 욕심 많은 나에게 참 만족스러웠던 오더도 내려졌었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또는 할만한 일) 위주로 하니 성과가 모두 좋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사실상 첫 번째 회사에서 쌓은 경험치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할까. 보다 큰 규모의 글로벌기업이다 보니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고 덕분에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대리 직급일 때 최연소 팀장을 맡아 무려 매주 월요일 임원회의에도 참석하게 됐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과장인 팀원의 인사평가도 하고, 차장으로 승진도 시켰다. 대리 직급에 팀장이라니.. 현실 세계에서는 사실 너무나 민망하고 난처하기도 했지만, 내 능력이 인정받았다는 객관적 증거라 마음속에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엄청났었다.


당시에는 내가 엄청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 적도 있으나, 지나고 돌이켜보니 나처럼 평범한 문과출신 마케터가 IT기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1. 상황을 넓게 보는 경향이 있다.


워낙 모르는 제품이다 보니 어떤 요소가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자료를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일까. 특수하게 전문인 분야가 있기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었기 때문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마케팅팀에 있던 문과출신, 이과출신 마케터 사원들을 봤을 때, 문과출신의 마케터는 상황을 보다 넓게 보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장님, 담당 엔지니어, 그리고 마케터인 나. 이렇게 셋이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날이후 그 엔지니어가 나를 얼마나 째려봤는지 모른다.


- 사장님 : 이 제품을 시장에 단품으로 내놓는다고 하면, 가장 우려되는 게 뭐야?

- 엔지니어 : 아무래도 스펙이 딸리니까.. 이미 시장에 풀린 제품들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냥 시장에 출시하지 말고 우리 필요한 곳에만 소소하게 쓰시죠.

- 마케터(나) : 전반적으로 스펙이 조금 부족한데, 이 부분은 시장 top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 적용될 설비에서 필요로 하는 스펙은 ㅇㅇ수준이라서요. 대신 ㅁㅁ부분을 보완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왜냐하면 몇 개 현장들을 조사해 보니 ㅁㅁ를 많이들 필요로 하는데 이 부분이 적용된 제품이 아직 없더라고요.

- 사장님 : (엔지니어를 쳐다보며) 들었지? ㅁㅁ보완 계획 가져와.



2. 메일을 잘 쓰는 편이다.


리포트든 독후감이든 줄글을 써본 경험이 많아서일까, 팀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IT기업의 문과출신 마케터는 메일을 잘 쓰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내용을 잘 정리하기도 하지만, 일단 그때그때 업무 내용을 공유하는 것에 괘념치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메일을 통해 우리 업무가 얼마큼 진행되고 있고,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고, 어떤 부분에 도움이 필요한지 등을 잘 정리해서 다른 부서 또는 파트너사에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겨버리면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상당할 수 있는데, 프로젝트 멤버 모두가 세부적인 상황을 알고 있다면 애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적을뿐더러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이 나눠지니 서로 부담이 없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IT기업의 문과출신 마케터는 메일을 잘 쓰니 문제상황을 억울하게 옴팡 뒤집어쓰는 일도 거의 없고, 윗분들이 볼 때는 일을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3. 이유, 정당성을 잘 만들어낸다.


이건 문과생 특징이 맞을까 싶긴 한데, 내가 IT기업에서 만난 문과출신 마케터들은 대부분 어떠한 이유나 정당성을 잘 만들어내곤 했다.


마케팅팀은 당장의 수익을 가져오는 팀이 아니다. 오히려 회사의 돈을 쓰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활동들을 할 때는 그 이유, 정당성이 꼭 필요하다. (어디 남의 돈 쓰는 것이 쉽겠나..)


내가 IT기업에서 만난 문과출신 마케터들은 어떠한 업무 목표를 세웠다면 그 이유, 정당성을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까지 이렇게 완벽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찾아내곤 했다. 수많은 자료 중에 내 목표에 딱 맞는 근거를 잘 골라낸다는 것이다. 이건 인터넷서치를 잘해서 그런 건지, 근거 찾기에 진심이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또, 어떤 일에 대한 보고를 할 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더라도 잘 받아낸다. 나중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핵심이 없는 말인데도 현장에서는 되게 조리 있는 척을 잘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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