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은 어디까지가 적당한 걸까?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작년 한 해 제 글을 구독해주시고 따봉을 눌러주신 여러분께 쌍따봉과 함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아마도 함께 자녀를 키우고 계신 분들이시겠지요?
저는 첫째를 키우면서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날 이렇게까지 사랑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매사에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둘을 낳아 기르면서는 지옥을 맛보았어요. (앗, 속마음! ㅋㅋ)
'요 귀여운 게 자꾸 커서 사라지는 게 아쉬운 마음'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 많은 엄마들의 증언에 공감하게 되었어요.
아이 키우기는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만큼 달고 가슴 벅찬 일이에요.
잠자는 아이 볼때기를 가만 비벼보다가 그 앙증맞은 감촉에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로 터질 새라 아이 몸을 안아본 일이 있는 여러분이라면,
그 벅찬 감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시리라 믿어요.
함께 이 치열하고 달콤한 육아의 현장을 지켜내고 계신 육아 동반자 여러분들께,
올 한 해 더 힘내시라고,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 사랑의 에너지로 무럭무럭 밝고 건강하게 자라리라고
뭣도 아닌 저지만 확신에 가득 차서 점쳐봅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드리면서, 새해 첫 글 시작하겠습니다^^!
2015년은 나의 사랑하는 둘째가 태어난 해인 동시에, 어느 초등학생의 시집 한 권이 신문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만든 해이기도 하다. 둘째가 태어났다는 것은 적어도 2015년의 몇 달, 하루에도 수십 번 '나는 인간인가 젖소인가'를 뇌까리며 첫째 밥 먹이고 둘째 밥 먹이고 나 대충 잔반 말아먹고, 첫째 옷 입히고 둘째 옷 입히고 나 대충 지퍼 달린 수유복 걸쳐 입고, 첫째 똥 닦고 둘째 똥 닦고 내 똥은 쌀까 말까 하던 때인데, 그 금수 같던 시기에도 저 시집 한 권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것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사건이었다는 말이 된다.
시집을 출간한 아동이 당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일단 시집과 작가 이름은 모두 밝히지 않기로 한다. 사실 사건이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국내 여러 백일장에서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은 초등학생 시인이 시집을 발간했는데, 개중 한 편에 학원 가기 싫은 마음을 녹여냈고, 그 시에 다소 과격한 표현들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실체의 전부였다. 표현이 과격하긴 했다. 학원이 너무 가기 싫은 마음이 드는 때에는 엄마를 잡아먹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어른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밥 벌어먹는 일의 괴로움 때문에 누군가를 향한 살의에 휩싸이는 것처럼, 아이로서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당연한 감정을, 문학적으로 좀 서툴지만 상상력을 가미해 진솔하게 표현해낸 것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 시에다가 엄마를 잡아먹는 듯한 삽화를 끼워 넣었다는 것이고, 시집 전체의 내용 중 해당 시만 쏙 발췌해 '패륜시'라는 단어와 함께 공유한 어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원색적인 기사가 그야말로 쏟아졌다. 아직 초등학생인 시인을 향해 '사이코패스'를 비롯한 온갖 악플도 넘쳐났다.
문학에는 화자라는 존재가 있다. 그는 작가가 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이다. 그는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지만 작가 자신은 아니다. 작가가 곧 화자일 때, 시도 소설도 더는 (일반적인 의미의) 문학이 아니게 된다. 굳이 화자라는 페르소나를 사용해서 문학작품을 서술하는 이유는 작가 자신의 세계관과 당대의 철학을 극대화하여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는 아마 우리 일상과 너무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와 호응을 유발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유의 세계를 넓히기도 어렵다. 뻥이 좀 있을 때, 온갖 역설과 과장이 섞여 있을 때, 일상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삶의 형태는 전혀 새로운 모양과 색채를 띄고 그러나 더 명징한 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드러난다. 알베르 카뮈가 쓸데없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여자나 꼬시고 돌아다닌 화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낸 것이 아니다. 그가 표상하는 존재의 허망함이 카뮈가 살아냈던 시대의 군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철학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방인>을 읽고 난 뒤에 고작 '작가 놈이 패륜아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2015년, 나의 둘째가 태어나 하루 종일 수유복 지퍼를 닫았다 열었다 해대던 그 처절한 와중에, 나는 그런 몰상식한 기사들과 댓글들까지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아마도 시인은 정말 학원에 가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학원 공화국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 연령대의 국민들이 십 대의 손자 손녀 아들딸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나라다(심지어 십 대 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월화수목금토일 쉬는 시간 없이 빽빽하게 오만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잊을 만하면 다큐는 물론이고 예능에까지 등장하는 나라인데도, 학원에서 학원으로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떠돌다가 자정이 다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수두룩 빽빽한 데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많지 않다. 고작 초등학생의 학원 가기 싫다는 외침이 수만 개 기사로 양산되어 '패륜'이라는 딱지를 달고 돌아다니는 반면에 말이다.
당시 문제의 시를 쓴 시인의 부모 인터뷰를 보았는데, 두 분의 대응은 깔끔했다. 그 시를 보고, '아, 아이가 학원에 가는 게 싫은가 보다.' 생각하고 아이가 다니기 싫다고 하는 학원은 끊었다는 것이다. 그랬으면 된 것 아닌가? 마치 사교육반대운동본부 같은 곳에 근무하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나는 부모는 가르쳐줄 수 없지만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분야의 사교육을 매우 신봉하는 사람이다. 물론 베스트는 그 모든 교육이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나는 그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형태의 사교육에 찬성한다. 현재 우리 첫째는 반기마다 책 한 권을 완성하는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한 차례의 방출 끝에 산만한 우리 아이를 '내추럴 본'이라 받아들여준 두 번째)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있다. 둘째의 경우 상반기에 애 상태를 봐서 클라이밍 학원에도 찾아가볼 예정인데, 산만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 개 목표가 생기면 끈질기게 달려드는 둘째의 성향과 왠지 잘 맞아떨어지는 운동 같아서이다.
무엇보다 첫째가 다녔으면 했던 곳은 영어학원이었다. 취업할 때까지만 해도 영어는 스펙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여겼었는데(다 멍청해서 했던 생각이었다), 막상 출판사에 들어오고 보니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세계를 의미했다. 그나마 대학 때 취미 삼아 배운 일본어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일본어권 외서들을 차례나마 검토할 역량이 안 되었다면 편집자로서 제대로 성장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더니(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나와 남편 모두 자기 월급을 벌기 시작한 후에야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다녀보았다.) 다녀와서 남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들과의 대화였다. 눈에 보이는 메시지, 각기 제 나라의 악기를 닮은 듯한 억양들, 태어나 처음 본 것들에 대해 처음 본 이에게 묻고 상대가 들려주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인상적인 여행의 추억이 없었다.
이런 연유로, 초등 1학년이 된 무렵의 아이에게 넌지시 영어학원엘 다녀볼 생각은 없는지를 물었더니 딱 깔끔하게 '싫다'고 했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앞서 든 이유들을 설명해주었는데도, 엄마가 하면 자기는 옆에서 듣고 있겠다는 거였다. 이후 도쿄 여행을 다녀온 뒤에 혹시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물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고, 영어 얘기는 더 꺼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들을 때마다 불편하시단다. '에휴, 저게 나중에 사회인이 되어서 불편해 봐야 엄마 맘을 알지' 싶다가도 어차피 저 녀석이 사회인이 되고 난 사회라면 영어가 무슨 대수겠는가. 19년에 회사에서 새로 사용하기 시작한 그룹웨어에서는 메신저는 물론이고 PPT 번역 지원도 되던 참이었다. 그래, 뭐 기계가 다 알아서 해줄 것이다. 더는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영어학원 따위는 생각지 않고 지내다가 입사 10년차를 기념하기 위해 뉴욕행 티켓을 끊은 얼마 전이었다(이때만 해도 유급 휴가에 포상금으로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졸지에 퇴직금을 타먹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여튼 좋게 나왔다ㅋ). 첫째와 함께 다니면 좋을 곳을 차례로 정리해두고 함께 들으면 좋을 그림 클래스들을 정리해보았는데(우리 둘 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스케치 수업과 맨해튼 거리 그리기 등 무척 다양했다. 나는 일단 노트북에 방문 장소와 숙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미술 수업들을 정리한 뒤에 첫째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이는 뉴욕의 다양한 풍경과 먹거리, 근사한 숙소들에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여긴 꼭 가보자, 오, 여기도 꼭 가보자!' 기대와 의욕이 넘쳤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의 타임 테이블을 확인하는 시점에서는 이미 뉴욕에 와 있는 것처럼 신나 했다. 이런 기대와 흥분은 현지 미술 클래스 목록을 확인할 때 정점에 달했는데, 박물관 스케치나 거리 그리기 모두 생각만 해도 설레는 모양이었다. 덩달아 신난 나도 화면에 보이는 영어 지문들을 읽어 내려가며 "어머, 여긴 이런 것도 된대. 아, 이거는 연령 때문에 안 되겠다. 12살은 넘어야 된대." 등과 같이 설명해나가고 있던 때였다. 아이가 잠깐 "아, 이거..." 하고 얕은 탄식을 내뱉더니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영어를 배워야겠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영어학원을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오는 것이었다. 자기는 초보니까 꼭 '영초(영어초보 ㅋㅋ)' 반으로 등록을 해달라면서, 자기는 '초보인 자기가 너무 좋다'는 쓸데없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 이런 뉘앙스구나' 깨달음이 왔다. 8년을 키우면서도 알지 못했던 아이의 새로운 무늬를 발견한 것 같았다. 대화가 오간 직후에 주변의 추천을 받아 적당한 학원이라고 여겨지는 곳의 상담예약도 해뒀는데, 아이가 서점에서 영어학습도 할 수 있는 태블릿 하나를 보고 오더니 그 자리에서 신청을 해서는 영어학원을 다니기 전에 태블릿으로 기본적인 공부를 해보겠다고 해서 일단 대기 중에 있다. 방금 문단을 보라. 어느새 행위의 주체가 나에서 아이에게로 옮겨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요를 느끼자, 시키지 않아도 자기에게 맞을 것 같은 방법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 첫째는 절대로 특별한 아이가 아니다(나한텐 너무 특별하지만 ㅋㅋ). 어제도 14-11을 한참 동안 고민하는 것을 옆에서 내가 똑똑히 보았다. 다만 보편의 인간처럼, 필요가 생기니 우물을 파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저 흥미가 얼마나 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유~ 우리 애는 지가 뭘 스스로 하는 법이 없어. 내가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한다니까~"라는 한탄 이전에 뭘 스스로 계획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나도 이번에 느낀 것이지만, 최고의 동기는 '필요'인 것 같다. 달리 생각해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돈과 시간을 들여 배울 필요도 없다. 이 단순한 논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역시 부모로서의 욕심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