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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사 Dec 14. 2020

작가의 말

0. 한참 늦은 팬레터

“그런데 무한도전은 끝났잖아.”


무한도전 때문에 첫 부부싸움을 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혼

이다. 신혼이 따끈따끈한 이유는 맨날 붙어있어서 추울 틈이 없

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부부도 찰싹 붙어서 집 안에 후끈한 온기

를 불어넣은 덕분에 가정의 화목과 가스비 절약을 동시에 이뤄냈

다. 겨울철 가스비가 각자 따로 살 때보다 적게 나왔다. 이대로 가

면 ‘싸랑의 불꽃’이 탄소 배출 없는 차세대 청정에너지로 주목받

을 날이 올 것만 같다.


여느 때처럼 싸랑의 불꽃이 활활 타던 금요일 밤. 내가 퇴근하

며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두툼한 방어회를 사 오자 아내는 특별

한 날만 마시는 위스키를 꺼내왔다. 아내가 간장 종지에 고추냉

이를 짜는 동안 나는 마세고의 ‘Queen Tings’을 틀고 미러볼을

켰다. 거실은 금세 빙글빙글 돌아가는 알록달록한 불빛들과 미끈

한 음악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불금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식탁 앞에 서로 찰싹 붙어

앉았다. ‘나 한입. 여보 한입. 또 여보 한입. 아잉 몰라잉. 왜 나만

이렇게 많이줘잉.’ 방어가 살아 있었다면 뺨을 맞을 정도로 잉잉

거리는 사이 집 안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악마가 직접

찾아가기 힘들 때 술을 대신 보낸다는 탈무드의 격언 때문인지.

아니면 차세대 청정에너지 싸랑의 불꽃을 무력화하려는 지역난

방공사의 음모인지. 식탁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내가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술과 음악, 미러볼 때문에 어쩌다 대화가 그렇게 튀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술자리에서 매번 그렇듯이 내가 또 무한

도전 이야기를 떠들었을 것이다. 재석이 형과 형광팬 캠프에 다

녀온 이야기나 웃다가 기절할 뻔했던 특집들 같은. 그러던 중에

아내가 불쑥 말했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끝났잖아.”


“아냐! 무한도전은! 아직…. 나한테는….”


“어? 오빠 왜 그래? 오빠 … 울어?”


갑자기 뜨끈한 솜뭉치가 목에 콱 틀어박힌 것 같았다. 무한도전

은 끝났다는 말에 ‘무슨 소리야, 아직 안 끝났어.’하고 대꾸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머리로는 무한도전이 종영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매일 무한도전을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여전히 무한도전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래서인

지 무한도전이 끝났다는 실감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끝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니 목이 콱 메

서 눈물이 나왔다. 속상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한도전이 정말

끝났구나 싶었다. 나는 아직 보낼 준비가 안 되었는데 갑자기 끝

나버렸다.


아내가 놀라서 당황한 만큼, 나도 내 눈물에 당황했다. 끝난 지

2년은 지난 프로그램이 뭐 대수라고. 금요일 밤에 방어회를 앞에

두고 울 일인가 말이다. 미러볼은 내 맘도 모르고 반짝거리며 빙

빙 돌았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내의 말에 평소 같으면 웃으

면서 대꾸했을 것이다.


‘무슨 소리야. 무한도전 완전히 끝난 거 아니거든?’ 지금도 어

딘가에 24시간 무한도전만 틀어주는 채널도 있다는 말씀! 그

리고 내가 매일 찾아보는 한 끝난 거 아니야! 나한테 무한도전은

끝난 적 없어.’


그런데 한마디도 못 하고 울어버렸다. 조금 분하고 서러웠다.

 ‘내가 너무 극성스러운 무도빠 인가? 아직도 무한도전을 보는 

사람은 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글펐다. 이 책은 그래서 

썼다. 아직도 무한도전을 보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서.


나는 전문작가도 아니고, 이 책은 나의 첫 책이자 작고 귀여운 

내 용돈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서툴고 모자란

 부분이 많다. 잘 쓰는 건 애당초 생각도 못 했고 그저 솔직하게 쓰려고

 애썼다. 내 평생의 자랑거리인 무한도전 형광팬 캠프 이야기와 군

 전역 후 시작한 노점상, 고시원과 콜센터를 오가던 6년, 서른이 넘어

 시작한 수험생활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해준 무한도전에 대하여.

내가 사회에서 첫걸음마를 떼느라 비틀거릴 때, 마음을 다쳐서 주저앉아

 있을 때. 무한도전은 나와 함께 절뚝거리며 걸어줬다. 덕분에 나는 제법

 능숙하게 걷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다.


어떤 기적 같은 우연 덕분에 이 책이 멤버들에게 닿는다면 정말

감사하다고.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노홍철, 길, 전진, 황광희, 

조세호, 양세형, 최영근, 여운혁, 권석, 제영재, 장승민, 이경엽, 

손민구, 마건영, 박진경, 늘메, 박창훈, 김부경, 이언주, 김란주, 

김윤의, 이향숙, 명민아, 주기쁨, 성희원, 백민정, 허달명, 장용대, 

박만규, 조상건, 박승철, 박지만, 최종훈, 정석권, 한경호, 조미혜, 

송은정, 장형철, 김진석, 똘이, 신미소, 김주연, 문종승 그 밖에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모든 제작진과 빅웃음을 줬던 수많은 게스트들 

그리고 김태호 PD에게.


나의 무한도전에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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