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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사 Dec 14. 2020

시장 골목 단밤 전쟁 1

1.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30만 원짜리 기계로

250만 원짜리 기계를 이길 방법을 떠올렸다.


장사해본 적이 있으신지? 지금은 공노비가 되어 월급을 받고

있지만 나는 사회 첫발을 노점부터 시작해서 오랜 시간 무언가를

팔면서 돈을 벌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월급과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은 몇 가지 차이가 있었다.


첫째, 장사는 실력이 돈으로 바로 확인된다. 월급을 받을 때는

내 능력이 맞은편에 앉은 동기보다 더 뛰어나거나 모자라도 월급

은 비슷하다. 누가 승진을 하지 않는 이상 버는 돈으로는 바로 비

교가 되지 않는다. 장사는 실력의 차이가 바로 돈으로 비교된다.

같은 물건을 팔아도 화술과 수완에 따라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거

나, 적게 벌거나 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당일 저녁 돈 통에 쌓인

돈을 세거나, 빈 통에 쌓인 먼지를 터는 것으로 확인된다


둘째, 장사는 시간이 곧 돈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시간은 돈이

지만 보통 월급쟁이는 주말에 쉰다고 월급이 깎이지 않는다. 장

사는 다르다. 한 달에 22일 일하는 것보다 26일, 30일을 일하는

게 보통 매출이 더 높다. 남들이 쉬는 날의 매출이 대게 평일보다

높기 때문에 남들이 일할 때도 일하고, 쉴 때도 일하는 경우가 부

지기수다.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장사에는 병가가 없다. 나랑 같

은 상품을 파는 사람은 또 있기 마련이고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을

파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래서 그날 벌 수 있었던 돈을 포기하

겠다는 마음을 먹어야만 쉴 수 있다. 월급쟁이와 장사 둘 다 해본

사람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몸이나 마음이 아파도 움직이는 버

릇이 든 사람은 장사꾼들이 많았다. 일단 나부터가 상처가 아물

지 않았어도 몸을 움직이는 버릇을 들인 건 노점을 시작하고 나

서였다.


셋째, 장사는 진입장벽이 낮다. 가지고 있는 돈에 따라 노점상

이든 매장이든 차려서 장사를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괜히 월급쟁

이들이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하는 말을 달고 사는 게 아

니다. 비슷한 말로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도 있다. 아무튼, 장

사는 누구나 언제든 시작할 순 있지만, 위에 언급한 대로 실력이

필요하고,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초보자가

쉬는 날도 반납하고 실력을 쌓으면서 버텨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장사에 쉽게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많다.

장사는 잘하기는 어렵고 오래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말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간혹, 이렇게 어려운 장사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들

이 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천성이 낯을 안 가

리고 넉살 좋게 말을 잘하며 유머 있고 꼼꼼하면서도 실행력을

갖춘 똘똘한 사람. 무한도전에서 꼽아보자면 홍철이 형이다.


무한도전 초창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홍철이 형이었다.

물론 나중에 재석이 형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바뀌기는 했지

만. 사실 홍철이 형은 무한도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규격 외의 새

로운 캐릭터였다. 케이블 방송에서 '닥터 노'로 활동했던 시절부

터 빠른 말과 특이한 손동작, 생김새까지 뭐하나 기존에 방송인

들과 닮은 점이 없었다. 군대에서 처음 홍철이 형이 티브이에 나

왔을 때 내무반의 모든 사람이 넋을 놓고 봤었다. 여자 아이돌이

아니면 단숨에 채널을 돌리던 군인들도 이 새로운 캐릭터에 관심

을 보일 정도로 신선했다.


나는 그 특이한 캐릭터에서 무언가 냄새를 맡았다. 뭔가 특이

한 이력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홍철

이 형은 대학생 신분으로 홍철 투어라는 걸출한 회사를 운영했었

고 의류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었다. 도저히 지치지 않는 것 같은

특유의 에너지로 무박 2일 중국 짝퉁 시장 도깨비 투어 같은 특

이한 패키지를 이끌었고, 반짝이가 가득 붙어서 입으면 움직이는

미러볼이 되는 옷을 파는 수완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좀 괴상하고 하찮아 보여도 거기에 특유의 에너지와 재미를 더

해서 즐겁게 장사하는 일류 장사꾼의 마음가짐이 엿보였다. 바로

직감했다.


‘이 사람이 내 롤 모델이다.’


당시 나는 노점을 차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역을 앞두고 당

장 내 병원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대

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등록금이나 아끼자

는 생각으로 대학은 시원하게 자퇴한 상태였다. 어차피 장사하

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홍철이 형은 딱

맞는 타이밍에 찾아온 롤 모델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우스워 보

이는 일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모두 즐거울 수 있게 장사하

는 태도와 센스는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내무반과 말년 휴가 나오는 버스 안에서 틈틈이 홍철이 형을

떠올리며 말투와 행동을 연구했고 제대한 바로 다음 날부터 노

점을 시작했다. 재래시장 골목 횡단보도 옆에 자리를 잡고 단밤

을 팔았다. 시장에는 이미 다른 간식거리를 파는 장사꾼이 많았

고, 성공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 궁리 끝에 나름 유니폼을 만

들었다. 통이 넓은 건빵 바지에 흰색 수건을 머리에 두건처럼 썼

다. 목에 헤드셋을 끼고 틈틈이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면서 사람들

을 끌어모았다. 소리도 질렀다. 골목 끝 분수대에 앉아있던 사람

이 놀라서 물에 빠질 정도로.


“자아, 단밤 사세요! 한 봉지 삼천 원, 두 봉지 오천 원입니다!”


나는 장사를 하면서 주요 타깃을 여성들로 잡았다.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신호가 바뀌어 건너오는 손님 중에 여성분들이 보이면

단밤을 건네며 홍철이 형 흉내를 냈었다. 속사포처럼 단밤이 피

부미용부터 다이어트까지 다 좋다고 손짓·발짓하며 떠들었다. 손

님들이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이미 다들 손에 단밤 봉지를 들고

있었다. 한동안 이 전략을 사용하다가 나는 진짜 VIP 고객이 누

군지 알게 되었다.


바로 꼬마 손님들. 엄마 손을 잡고 가는 꼬마들에게 몇 알씩 단

밤을 건네면 저만치 갔다가 눈가에 눈물을 달고 엄마한테 안겨서

단밤을 사러 왔다.


“아휴, 애가 사달라고 떼를 써서요. 두 봉지 주세요.”


전략이 먹히자 나는 꼬마 손님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노점 마차

에 다람쥐 통을 달아놨다. 단밤을 사서 다람쥐에게 먹이려는 꼬

마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안타깝게도 다람쥐와는 금세 작별해야

했다. 몰려드는 손님들에 비해 다람쥐는 너무 작아서 단밤을 먹

다 남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람쥐가 단밤을 먹지 않으면 꼬

마 손님들이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곤란했다. 거기다 냄새와 관

리도 어려워서 별수 없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츰

장사 수완을 길러갔다.


이런 장사 수완도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나는 장사 초

기에 거의 경건함에 가까운 태도로 장사를 대했는데, 하품하는

걸 손님들이 볼까 봐 노점 마차 안에 얼굴을 넣은 다음에 하품했

었다. 물론 1년쯤 지나서는 그냥 쩍쩍 하품했지만, 아무튼 처음

에는 그랬다. 근무일은 첫날부터 그만둘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추석이든 설날이든 생일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장사했다. 병원 진

료를 받는 날이 아니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사했고, 왼손이 단

밤 굽는 기계에 빨려 들어가 17바늘을 꿰매고도 그날 장사는 마

무리했다. 장사를 열심히 할수록 매출도 오르고 주변에서도 젊은

친구가 대단하다며 칭찬해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주변 노점상들의 견제와 질투가

끊이질 않았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럴 수가! 그 견제와

질투에 아버지가 포함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 부

모님은 시장에서 오랫동안 과일과 채소를 파는 노점을 하셨다.

내가 노점을 시작했던 것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처음에는 극

구 반대하셨지만 결국 승낙하셨고 나는 부모님이 장사하는 곳 부

근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오랜 시간 시장에서 일하신

탓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고 덕분에 수월하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저 몇 달 하고 그만두겠거니 했던 총각이 1

년이 다 되어가도록 손님들을 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른 노점들도 단밤을 팔기 시작했지만 나는 기존에 만들어둔 단

골들과 성실함을 무기로 경쟁자들을 저만치 따돌렸다. 그렇게 매

일 손님들을 줄 세우며 다람쥐 왕국도 먹여 살릴 만큼 단밤을 팔

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단밤 기계를 시켰다.”


“네? 지금 있는 기계로도 충분한데요? 지금도 손님들이 몰리

면 줄을 서서 기다리긴 하지만 기계를 더 사야 할 정도는 아니

에요.”


“아니, 그건 내가 쓸 거야. 그러니까 너는 다른 곳에 가서 장사

하도록 해.”


아버지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다음날 진짜 단밤 기

계가 도착했다. 동네 공업사에서 30만 원을 주고 만든 내 기계와

는 달리 단밤이 구워지는 모습이 보이도록 전면 통창이 달린, 심

지어 내부에 조명과 음악까지 나오는 250만 원짜리 기계였다. 그

기계를 내가 장사를 하던 자리에 설치하면서 아버지는 다른 곳에

가보라고 나를 쫓아냈다. 아버지는 쫓아낸 게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쫓아낸 거였다. 충격과 혼란 때문에 머릿속에서 수많은

자아가 소릴 질렀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아버지까지 나를 질투할 줄이야!

이게 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가? 아니, 그건 아들이 아버지

를 질투하는 건데? 지금 그게 오이디푸스든 오이소박이든 간

에 무슨 상관이야! 지금 내 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아들은 충격으로 다중인격이 될 판인데 아버지는 담담하게 이

유를 말했다. ‘손님들이 계속 줄을 서야 하니 아직 수요가 충분하

다. 손님들이 워낙 많으니 장사가 잘될 때 얼른 기계를 더 사 와

서 돈을 벌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질

투가 난 게 분명했다. 몇 개월간 같은 자리에서 고생한 끝에 이제

야 단골들이 생기는데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라니? 거기다 아버

지는 그 자리에서 단밤을 판다니? 너무 억울했지만, 아버지는 요

지부동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쉴 수는 없었다.


 머릿속으로 ‘이게 그 아침 드라마에서나 보던 경영권 다툼 같은

건가? 근데 우리 집은 재벌이 아닌데?’ 같은 현실 도피적인 생각

을 하며 노점 마차를 밀었다. 그날따라 더 무겁게 느껴졌다. 원래

장사하던 곳에서 한 400m 정도 떨어진 우체국 옆 분수대로 자리

를 옮겼다. 원래 장사하던 곳보다 훨씬 좁고 사람도 별로 없는 자

리였다. 옮긴 첫날, 매출은 작고 귀여워졌다. 어찌나 작아졌는지

보통 때의 반의반도 안 됐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첫날

부터 매출이 잘 나왔는지 운전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뒷좌

석에서 아버지의 콧노래를 들으며 속으로 복수의 칼을 갈았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30만 원짜리 기계로 250만 원짜리 기계를 이

길 방법을 떠올렸다.


며칠 뒤. 아버지가 그 도장은 뭐냐고 물으셨다.


“아, 이거요? 쿠폰에 찍어주려고 만든 다람쥐 모양 도장이에

요. 귀엽죠?”


“쿠폰이라니? 갑자기 무슨 쿠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건빵 주머니에서 명함 크기의 쿠폰

다발을 꺼내 들었다. 다람쥐 얼굴이 박힌 쿠폰에는 빈칸 10개가

그려져 있었고 밑에는 ‘다람쥐 도장을 10개 모으시면 단밤 1봉지

공짜. 한 봉지에 상한 밤이 두 알 이상 나오면 교환해 드립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단골손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내 전략 중 하

나였다. 아버지는 노점에서 무슨 쿠폰이냐며 쓸데없는 짓이라고

손사래 치셨지만, 꽤 놀라는 눈치셨다. 후후,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아버지. 순순히 경영권을... 아니, 단밤 마차를 포기하

시는 게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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