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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사 Dec 14. 2020

시장 골목 단밤 전쟁 2

1.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나는 장사가 끝난 야밤에 시내 곳곳을 돌며 포스터를 붙이기 시

작했다. 내 얼굴이 들어간 노점 홍보 포스터였다. 포토샵을 쓸 줄

몰라서 컴퓨터 그림판으로 영화 포스터에 내 얼굴을 잘라 붙였

다. 아마도 영화 괴물 포스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포스터에 괴물

이라는 제목의 자음과 모음을 자르고 늘리고 돌려서 단밤으로 바

꾸고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었다. 내가 새로 옮긴 위치도 표시해

서 손님들이 찾아올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준비한 포스

터는 시장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붙어서 나 대신 손님들을 끌어

들였다.


쿠폰과 포스터는 금방 입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손

님들은 줄을 서서 내 단밤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다 지쳐서 포

기하고 돌아가려는 손님이 생길 때쯤. 나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진공으로 포장한 단밤이었다. 내 단밤 굽는 기계는

작고 굽는데도 시간이 좀 걸리다 보니 손님들이 몰리면 다들 줄

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진공 포장 팩을 사다

가 미리 구워놓은 단밤을 진공 포장해서 준비해놓았다.


이걸 사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따끈한 단밤을 먹고

싶을 때 즐길 수 있었다. 양도 내가 굽는 것보다는 더 넉넉하게

넣었다. 반응은 기가 막혔다.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진공으로 포장한 단밤 덕분에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가버리는 손님들까지 다 잡을 수 있었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옮기

기 전보다 매출은 두 배 늘었다. 그렇지만 늘어난 매출보다 기분

이 좋았던 건 아버지의 단밤 기계가 창고로 들어갔기 때문이었

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 두 달간의 단밤 전쟁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흔드셨다. 시장 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세상에 저렇게 지독한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 본다며 혀를 찼다. 그동안 시장에서 단밤

을 팔던 다른 노점들은 모두 두 손 들고 포기했다. 마지막까지 버

티던 아버지가 창고에 단밤 기계를 넣으실 때 도와드리며 승리자

의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기곗값은 벌었으니 이걸 중고로 팔면

그만큼 이득을 본 셈이라는 아버지께 특짜 모둠회에 소주를 따라

드리는 것으로 부자간의 단밤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물론, 내 자

리도 다시 찾았다.


이 경험은 곧 내 영업 철학이 되었다. ‘이것저것 색다른 방법을

찾아서 재미있게 해 볼 것.’ 서울에 올라가 전화로 보험을 팔 때

도 이 철학 덕분에 좋은 결과를 냈다. 예를 들어 고객과 녹음이

다 끝나고 보험 판매가 완료되면 나는 마이크에 대고 손뼉을 쳤

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든든하게 보장을 받게 되었으니 축

하한다는 뜻이었고, 긴 청약 내용 녹음에 지루해하던 고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녀가 있는 고객들은 꼭 자녀의 생일을 물어봤다. 그 생일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 사람의 사진을 배경으로 편지와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 사람처럼 훌륭하게 자라라는 덕담과 함

께. 한 번은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와 생일이 같아서 이승엽 선수

가 홈런을 때리는 사진 위에 프로야구 대기록을 세운 이 선수처

럼 건강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라고 써서 보냈다가 전화로 무

지하게 혼났다. 알고 보니 편지를 받은 것은 여자아이였고, 어머

니는 20년째 골수 롯데 팬이었다. 이 한 번을 제외하면 다들 좋아

했고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영업

실적은 좋았고, 일하면서도 즐거웠다.


지금은 우연의 장난인지 산골에서 식물을 연구하며 월급을 받

고 있지만 한 번씩 시장에 갈 때마다 장사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노점 앞을 지날 때면 지금 장사를 해도 전처럼 잘할 수 있을까 궁

금하다. 세상도 많이 바뀌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힘들지 않

을까?


그렇지만 홍철이 형이 무한도전에서 활약하는 걸 본 바로는 ‘폼

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했던 빌 샹클리의 말이

맞는 것 같다. 홍철이 형도 무한도전 속에서 말하는 속도나 제스

처 같은 것들이 차츰 변하고 캐릭터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번뜩

이는 장사꾼의 감을 보여주곤 했었으니까.


언니의 유혹에서 새우 무한리필(제한시간 1분) 같은 말도 안 되

는 상품을 기획해낸 건 홍철이 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준하 형에게 1분은 새우를 싹 쓸어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거기다 끊임없이 부업 및 사업을 하던 명수 형이 유력하지 않을

까 했던 쩐의 전쟁은 홍철이 형의 독무대였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도매상을 찾아가서 연필부터 시작해 반나절 동안 16만 원을

만들고, 100만 원으로 호두과자 장사를 시작해 하루에 81만 원을

번 장사 수완은 두 번의 쩐의 전쟁 특집에서 모두 홍철이 형을 1

등으로 만들어줬다. 쩐의 전쟁 두 번째 특집은 홍철이 형의 음주

운전으로 1등을 1등이라고 보여줄 수 없는 특집이 되어 아쉬웠지

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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