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하는 어른들을 위한 변명

어른의 정의 - 박정민 [쓸 만한 인간]

by Rain

린 시절의 나는 지독하게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거창한 목표나 야망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소고기뭇국에 담긴 흐물거리는 무를 먹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간절했을 뿐이다.


아버지와 한 상에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은 내게 일종의 규율이자 속박이었다. 내 밥상 위에는 '자유 의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김 한 장을 집었다고 호통을 들어야 했고, 무더운 여름날 아버지처럼 시원하게 홑겹 메리야스 차림으로 밥상에 앉지 앉았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샀다. 굴을 삼키지 못해 머뭇거리면 불호령이 떨어졌고, 뭇국 속의 무를 골라내는 행위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오해는 없길 바란다. 부모님은 고되고 바쁜 생업의 현장 속에서도 나를 충분히, 그리고 충실히 사랑해 주셨다. 단지 나의 편식이 유별났을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내 의지로 김치를 입에 댔을 정도니까. 그 시절 내가 꿈꾼 어른의 형상은 단순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내 밥상을 채우는 절대적인 자유. 나는 그 자유를 얻기 위해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부모가 되었고, 아내가 자리를 비운 어느 날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치즈 버섯 볶음밥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제발 한 입만 먹어보자 애원하며 겨우 숟가락을 밀어 넣었을 때, 큰아이는 채 삼키지 못한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음식을 게워내고 말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절대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음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아빠가 만들어 준 치즈버섯 볶음밥은 정말 맛이 없었어, 난 버섯도 못 먹는데"라고 회상하는 아이들의 기억 뒤에는, 나의 서툰 사랑이 있었다. 과거의 내 아버지도, 그때의 나도 본질은 같았을 것이다. 그저 몸에 좋은 것을 다양하게 먹이고 싶다는 마음. 다만 그 진심을 전하는 '태도'와 다정한 '대화의 기술'이 부족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서툰 어른의 시간을 통과한다.


이제 나는 식탁 위에서 무를 먹지 않거나 참고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주변으로부터 '아기 입맛'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나이는 먹었지만 입맛은 여전히 아이인 것을 보며 생각한다. 어른이란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게 되는 '식성의 완성'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 대신, 그로 인해 따라오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비용을 오롯이 내 몫으로 감당해 내는 상태를 뜻한다.


배우 박정민은 그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서 자신의 찌질하고 서툰 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는 어른을 '오늘 망쳐놓은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고 내일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임경선 작가 또한 어른의 태도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을 지켜내는 힘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화려한 무대 위에 짠 하고 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빈자리를 소리 없이 채우며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과정인 것이다.


최근 배우 이동휘가 한 예능에서 전한 위로도 맥을 같이 한다.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여건 속에서 20대마저 느슨하게 보내면 3,40대가 되어서도 힘들 것 같아 꾸준히 기회를 두드리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고백한다. 지난 시절 못다 한 '열심'을 오늘 다시 시작해 보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과정이야 말로 어른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설령 남들보다 조금 뒤처진 채, 늦게 철이 들고, 여전히 특정 음식을 거부하는 편식쟁이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단번에 무를 맛있게 먹게 되는 기적이 아니라, 먹기 싫어도 먹을 수 있게 되는, 아니, 실은 여전히 먹기 싫은 마음을 품은 채로도 내 앞의 식탁을 끝까지 지켜내는 성실함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아내 몰래 아이들의 소고기뭇국에서 무를 조용히 건져낸다. 누구의 강요도 없지만, 나는 이 식탁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책임들을 기꺼이 짊어진다. 아이들에게 억지로 음식을 강요하지 않는 다정함을 선택하고, 아내의 수고를 인정하며 가족의 안온한 저녁을 위해 직장에서 내게 주어진 몫의 고단함을 묵묵히 소화한다. 어느 어른들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묘한 장면을 목격했다. 손을 씻고 돌아온 식탁 위에서, 그 엄격하던 아버지가 손주들의 국그릇에 담긴 파와 무를 당신의 그릇으로 묵묵히 옮기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내 어린 시절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 '내리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도 당연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그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찰나의 묘한 질투를 느꼈다. 그 시절 나에게도 이토록 유연한 애정을 주셨더라면, 나는 조금 더 빨리 무를 먹을 수 있게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이 질투야말로 내가 여전히 덜 자란 어른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편식 좀 하면 어떤가. 하루하루를 도망치지 않고 그저 성실히 살아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근사한 어른이다. 여전히 '아기 입맛'을 가진 채로, 그러나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으로 내일의 하루를 준비하는 당신.


그런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가 기다려온, 가장 인간미 넘치는 진짜 어른이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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