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보다 사람을 보는 법 - 이기주 [언어의 온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 박제된 질문이 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그 시절 어른들의 질문은 늘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불심검문처럼 무례했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오거나 내가 친구 집에 가면 늘 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어디 사니?”,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니?”, “공부는 좀 하니?” 나라는 사람의 본질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배경부터 훑어내리는 그 투박한 질문들이, 어린 마음에도 참 ‘없어’ 보였다.
이기주 작가는 그의 저서 《언어의 온도》에서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어른들이 내게 던진 질문의 온도는 몇 도였을까. 아마도 상대의 마음을 데우기는커녕, 채 피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자존감을 서늘하게 식혀버리는 영하의 온도였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친구를 사귈 때마다 “늘 너보다 나은 아이를 만나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충실히 따른다면, 대체 누가 나와 친구가 되어줄까 싶어 마음 한구석에 반항심이 꿈틀거렸다. 부모님의 '친구 교제 가이드라인'을 따르려던 건 아니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부잣집 도련님처럼 티가 나게 귀티가 흐르던 아이. 30년 전인데도 온 가족이 골프를 즐겼고, 유학을 준비하던 그 친구는 부모님께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친구 스펙'이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라며 좋아하셨지만, 상대 부모님의 생각은 미처 여쭙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느 날 초대받아 간 친구의 집은 우리 집 안방보다 친구 방이 더 넓었다. TV 속에서만 봤던 우아함이 넘치던 친구의 어머니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는 나를 한눈에 간파한 듯했다. 내가 사는 동네를 듣자마자 굳어진 그분의 표정을 기억한다.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내게 와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은 곧 유학 갈 거니까,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이 흘러 가전제품 부문 한국 판매 총괄 대표님을 모실 때의 일이다. 출근하자마자 살핀 대표님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사연을 알고 보니 허탈했다.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 살다 보니 아들 친구 아빠들이 대개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었는데, 아들이 자기 아빠만 '회사원'이라고 부끄러워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사장조차 자식 눈에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에 어질어질했다. 철없는 어린아이의 눈에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보다 전문직 자녀가 가진 것들이 더 부러운 그들만의 세계였나 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이를 먹고 나니 그 시절의 불쾌감은 어디로 휘발된 것일까. 주말에 큰딸이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한다길래 나도 모르게 툭, 질문을 던졌다.
“친구 집은 어디야?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인데?”
딸은 이미 몇 번 가본 친구의 집 위치는 상세히 설명하면서도, 부모님의 직업에 대해서는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딸의 무심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멈칫했다. 내가 혐오했던 어른들의 무례함이 내 입술 끝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타인의 배경을 궁금해하는 마음 밑바닥에는, 내 아이가 조금 더 안전하고 매끄러운 길을 걷길 바라는 비겁한 안도감이 숨어 있었다. 그 시절의 무례한 어른들처럼 말이다. 이기주 작가의 말마저 빌려보자면, 내 언어의 온도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만큼 차갑게 식어 있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어린 학창 시절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통영의 섬에서 전라남도 장성으로, 서울 옥수동 달동네에서 분당 신도시로. 나는 최근까지도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많은 이사를 다닌 줄 알았다. 취업 자기소개서에도 '경찰공무원인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 때문에 이사를 참 많이 다녔지만 어디에서나 잘 적응했다'라고 당당하게 적었다.
최근 부모님과 식사 자리에서 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니 무심한 아버지가 툭 던지셨다. "뭔 소리냐." 부모님은 못난 아들이라도 서울에서 교육받고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무리를 하셨던 것이었다. 왜 우리 가족만 서울에 살고 친척들은 고향에 있는지, 그 의문이 어렸을적 내 나이만 한 자식을 키우면서야 풀렸다. 아버지는 당신의 삶을 깎아 자식의 배경을 조금 더 견고하게 다져주려 당신의 뿌리를 끊임없이 옮겨 심으셨던 것이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이제 농담도 곧잘 하신다.
"근데 네가 이렇게 클 줄 알았으면 괜히 그렇게 이사를 다녔어."
농담이 아닌 듯한 그 말 속에 담긴 묵직한 사랑을 이제야 헤아린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개차반인 자녀가 태어나기도 하고, 불우한 환경에서도 꽃처럼 피어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만났던 우아한 어머니나 실의에 빠졌던 대표님의 일화는, 배경이라는 껍데기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자라온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자녀인가'가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는가'이다. 태도는 배경을 이기며, 성품은 조건보다 오래 남는다.
이기주 작가는 어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도대체 어른이 뭐지? 순수함을 포기하는 건가, 낙관과 비관을 되풀이하면서 현실에 무뎌지는 것인가, 아니면 삶의 다양한 가치를 획득해 나가는 걸까, 꿈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하거나 반대로 메워나가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세상을 다 알아버리는 것?"
나는 어떤 어른이 된 걸까. 여전히 나는 세상의 속도에 맞춰 남의 배경을 가늠하고, 내 아이의 앞길에 방해물이 될까 봐 타인의 울타리 안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이제는 딸에게 다시 묻고 싶다. 그 친구가 어떤 직업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랐는지가 아니라, 너와 대화할 때 눈을 맞추는지, 사소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지,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아이인지를.
어른의 도리란 아이의 등 뒤에 서 있는 병풍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그려나가는 무늬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일이어야 한다. 좋은 배경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배경 없이도 당당히 설 수 있는 온전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이다. 나 역시 아직 ‘덜 된’ 어른이기에, 오늘도 입 밖으로 나오려는 속물적인 질문들을 삼키며 다짐해 본다.
배경이 아닌 사람을 먼저 보는 법을, 딸에게서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