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이자 - 너의 작업실 [장례 희망]
최근 내 삶에는 예고 없는 장례식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며 좋은 뜻을 마음에 품고 말레이시아로 떠났던 지인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 그리고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가 긴 암투병 끝에 정갈하게 남긴 마지막 인사. 겨울의 끝자락, 바깥의 공기는 서서히 풀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더 깊이 얼어붙었다. 계절은 언제나처럼 앞으로 가는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상실의 허망함과 당혹감 사이에서 하루를 그저 하루로 겨우 건너는 나날이었다.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꼭 안으면 바스러질까 어쩔 줄 몰랐던 내 분신은 어느덧 한 뼘씩 자라 내 어깨에 새까만 머리통이 닿고, 부모님의 주름은 이제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깊은 골이 되었다. 타인의 시간을 10분 단위로 쪼개어 관리하는 비서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정작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이 나이 들어가는 속도는 스케줄러에 기록하지 못했다. 결혼식의 찬란함으로 가득했던 좋은 계절은 어느새 무채색의 장례식들로 덮인다. 영원할 것 같은 인연들도 한철 매미의 귀 따가운 울음소리나 우주의 별처럼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우리가 서로에게 잠시 빌려온 존재임을 절감한다.
말레이시아로 떠났던 지인은 내 딸아이의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젊은 나이에 거머쥔 성공은 대개 교만을 부르기 마련이지만, 그는 늘 겸손의 자리에 머물며 소외된 이웃들을 살폈다.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더 깊이 배우기를 갈망했고,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흘려보내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나는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아이의 스승으로서 고마움을, 근사한 인간으로서의 경의를 언젠가 꼭 전하고 싶었다. 정말 전하고 싶었지만 이제 그가 있던 자리에는 국화꽃만 남아있다. 전하고 싶었던 진심은 도착할 주소를 잃고 허공을 맴돈다.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 역시 너무 이른 작별을 고했다. 젊음이라는 생명력이 무색하게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수술 후 예후도 좋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주한 그녀는 온전한 정신이 허락된 짧은 찰나에 잔인한 부탁을 남겼다.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으니 이제 더 이상은 찾아오지 말아 달라"라고. 투명하게 맑았던 그 웃음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지만, 사진 속에 찰나로 머문 그 미소는 이제 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그녀의 얼굴이다. 내 딸과 동갑내기인 그녀의 어린 딸을 볼 때면, 예고 없이 반납된 한 생애의 무게가 더욱 서늘하게 다가온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 내 것이란 없다"라고 하였다. 소유할 수 없기에 더 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이 역설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비서인 나의 일과는 타인의 시간을 촘촘히 배열하고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누군가의 회의, 누군가의 점심, 누군가의 출장지까지. 스케줄러 위에는 확정된 현재와 미래들로 빈틈없이 박혀 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불청객은 내가 관리하는 그 어떤 정교한 공유 캘린더에도 미리 등록되는 법이 없다. 철저히 '관리'된다고 믿었던 일상이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대여' 위에 서 있었는지를, 나는 장례식장의 검은 옷을 입고서야 뼈아프게 깨닫는다.
이 상실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최근 읽은 《장례희망》이라는 책의 어느 부고문 문장을 떠올렸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영정 앞에서 "더 자주 눕고 뒹굴거리며 서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겠다"라고 약속했다는 유족들의 이야기는, 나를 슬쩍 밀어 각자의 방에 있던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결국 빌려온 존재들에게 우리가 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이자는 결국 '시간'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만은 늘 곁에 있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물리적인 시간을 통과할 때에만 비로소 온전한 형태를 갖춰 상대에게 가 닿는다. "나중에 시간 내서 보자"는 말은 사실 "지금은 내 시간이 너보다 중요하다"는 무의식적인 거절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결코 친절한 예고장을 보내지 않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은 빌려온 존재가 내 곁에 머무는 '지금', 나의 스케줄러에서 가장 빛나는 칸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뿐이다.
나는 받고서 미처 답장하지 못했던 메세지들을 다시 읽는다. 다음으로 미뤄두었던 안부를 묻고, 다가올 주말에 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눌 시간을 제안한다. 죽음은 소중한 이들을 데려가지만, 우리가 함께 통과한 시간의 농도는 상실 이후에도 남겨진 이의 삶을 지탱하는 온기가 될 것이다. 돌려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서로의 생애에 가장 다정한 시간을 부지런히 빌려주고 빌려 받기로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잠시 빌려온 존재들이기에, 오늘 마주 앉아 나누는 찻잔의 김 서린 온기야말로 우리가 이 인연에 대해 치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자. 비록 '뭐야?' 하고 샐쭉한 눈흘김을 당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 무심한 눈길마저 사실은 내가 잠시 빌려온, 눈부시게 귀한 시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