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망할 준비

'쓰는' 마음의 연대 -임경선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by Rain

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를 읽고 나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다섯 가지 태도'를 깊이 사유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인생 책'이라 부르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오랜 상담으로 축적된 데이터 덕분인지, 혹은 작가의 삶이 켜켜이 쌓아 올린 내공 때문인지는 모른다. 다만 작가는 내 마음 깊은 곳의 고민을 향해 "너, 이게 힘들었지?"라고 조곤조곤 말을 건네왔다.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내 마음의 매듭을 함께 풀어나가는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관계의 생로병사, 그저 가만히 둬 보기로"로 그 기쁨을 정리해두기도 했다.


이 보석 같은 울림이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 하지 못한 말≫과 ≪나라는 여자≫를 찾아 읽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글을 쓰는 즐거움으로 옮겨가던 중, 저자의 신작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을 만났다. ≪태도에 관하여≫가 삶의 태도를 다룬다면, 이 책은 '글쓰기의 태도'를 다룬다는 소개에 마음이 끌렸다. 요즘 글을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브런치에 연재되는 다른 분들의 글만 보더라도 어쩌면 저렇게 글을 잘 쓰는지 초라한 내 필력이랄 게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했다. '나도 글을 써도 되는가?' 괜히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자원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종종 댓글에 '작가님'이라고 불러 주는 분들이 있어, 마음이 괜히 달뜨고 싱숭생숭해지기도 했다. 연애 초기의 감정처럼 사랑에 빠진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부지런히 챙겨 읽는 것이 팬으로서 예의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글쓰기의 태도'를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문장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어 부단히 읽어 내려갔다.


작가의 주 활동 반경이 나의 직장 근처라 점심 산책 길이나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만약 책을 다 읽기 전에 마주친다면 실례를 무릅쓰고 사인을 부탁하리라 마음먹었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놓지 못한 탓에 찬란한 흰 페이지에 김치 국물이 튀고 말았다. 낭패였지만, 한편으로는 이 얼룩이 독자의 지극한 애정으로 읽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위안을 삼기도 했다. 나 역시 언젠가 이런 글로 누군가에게 안온한 응원과 사유의 확장을 선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에서 작가를 만났고 사인을 받았다)


작가는 "글쓰기는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라고 명징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요령 있는 작법 기술을 전수하지 않았다. '너도 이 책만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어'라고 하지 않았기에 읽을수록 글을 쓴다는 것이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겁도 덜컥 났다. 오히려 저술업을 생업으로 하는 프로 작가의 창작의 고통과 글쓰기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작가로 사는 것에 대한 정직하고 내밀한 고백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쓸 만한 인간≫의 박정민 작가가 TV프로에 출판사 대표로 출연해 출판 업계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출판한 작품 ≪첫여름 완주≫가 하루에 삼백 몇 부가 팔렸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며 "하루에 영화 관객이 300명이면 완전 박살 난 건데 책은 하루에 300~500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는 자조 섞인 인터뷰였다. 오디오북이나 전자북 등 출판의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지난 10년간 회사원의 수입만큼 번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며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다음의 고백을 인용한다.


"시인 유진목은 산문 ≪재능이란 뭘까≫에서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쓰는 재능'을 두고 "죽지 않을 만큼만 돈을 주고 살려두면서 다른 선택도 못하게 하는 저주"라고 썼다. 그것은 분명 '불행한 재능'이지만 자신은 그것을 사랑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다. 좋은 의미이니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다. SNS에 일상을 기록하고, 블로그에 서평과 맛집 리뷰를 올리고, 브런치나 밀리의 서재에 하루에도 수만편의 글들이 작성되고 연재된다. 출판 시장은 급속하게 얼어붙었지만, 역설적으로 글쓰기는 특별한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AI도 책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다. 돋보기만 쓰지 않았지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생각을 적는 나로서는 여전히 종이책이 옳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오디오북이나 전자북 등 출판의 형태가 다양해짐을 거스를 수 없고 환영할 일이다. '글쓰기'의 즐거움이 보편화된 시대에 작가는 우리에게 글쓰기의 본질을 되묻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간절하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정성을 다해 표현하는 것, 그렇게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도 이미 충분한 것. 만약 절실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데 글을 고자 한다면 거기는 쓰고 싶다는 열망 외에 다른 부수적인 욕망이 끼어 있을 공산이 있다. 예를 들자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을 출간하고 싶다거나 작가로 호명받길 원한다거나 그러한 본질 밖의 욕망들은 글을 쓰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의 절실함과 기쁨에서 시작한다."


5g이 안 되는 종이 한 장에 들떴던 내 마음이 시원하고 사정없이 베였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이래서 언제 작가가 되어 책을 낼 수 있냐고 푸념했던 민망한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날은 짧았고 못된 상상력만 늘었다.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본인만 아는 나를 진실하게 대면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날 것과 같은 내면을 마주하는 창작의 고통과 어려운 출판업의 현실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겸손한 이 작가는 글쓰기라는 부조리한 세계에 완벽히 매료된 예찬론자다.

"마음의 진실을 따라가는 일은 나 자신에게 제대로 돌아왔다는 확실한 감촉을 느끼는 것이다. 그때 나는 가장 매혹적인 상태의 내가 되었음을 감지한다."


≪태도에 관하여≫에서 인용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처럼 작가는 쓰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숭고한 동지애를 보낸다.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쓰지 않고서 견디지 못하겠다면, 한 사람의 작가로서 마음을 열고 환영합니다."라고 말이다. 결국 야멸찬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지만 남는 것은 ‘보다 나은 글’을 함께 쓰자는 작가의 깊은 진심이며 '쓰는'사람들에 대한 다정한 응원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을 뜯어말리며, 그래도 써야겠다면 "나와 더불어 가늘고 길게 망하자"라고 썼다. 나 역시 글쓰기라는 이 아름답고 부조리한 세계에 매료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닿을 수 없는 환상과 못된 생각 속 현실을 내려놓고 쓰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했던 나의 처음을 다시 생각해 본다. 기교 섞인 문장보다 진심을 눌러 담은 한 문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마음먹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창작이라는 행위를 아무런 유보 없이 계속 사랑하기로 한다. 진심으로 열망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행동을 일으킨다. 그 일을 하고 싶으면 우선 그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같은 진리. 누구에게 질문할 필요조차 없고 더더군다나 누가 말린다고 해서 관두지도 않는다." - ≪태도에 관하여≫

그러니 당신에게도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써 내려가는 솔직하고 고독하고 치열한 즐거움에 동참해 보기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가로 불리지 못해도 혹은 조금 일찍 망하더라도 내가 나를 마주하는 기쁨만큼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될 테니까.

"가늘고 길게 망할 준비가 나는 이미 되어 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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