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의 오해 -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결국 나는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내가 애들 좀 일찍 재우라고 했지!"
"너도 얼른 들어가서 씻으라고!!"
밤 11시 50분. 누군가는 이미 깊은 잠에 들었을 이 시간에 우리 집 거실은 여전히 환하다.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10시 30분. 간식을 먹고 돌아서니 11시, 각자의 방에서 쉬다 하나둘 거실로 모여 서로의 말에 반가운 기색을 얹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평생을 깐깐하고 보수적인 경찰 공무원으로 사셨던,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나로서는 이 시간까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소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잔소리는커녕 아이들과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아내를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졸음을 참으며 식탁에서 둘째의 영어 단어 시험지를 인쇄하던 나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끄럽게도 내가 그토록 예민하게 굴었던 한밤중의 드라이기 소리보다 훨씬 더 큰 소음을 내가 직접 내고야 말았다. 평소 다정했던 아빠에게 느낀 배신감 때문이었을까. 사춘기 딸은 "원래 12시에 씻으려고 했다"라며, 폭력적인 어른에게 논리적으로라도 지지 않겠다는 듯 평소보다 과장된 동작으로 속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세차게 들려오는 샤워기 소리에서 아이의 억울함과 놀란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이 모든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는 듯 원망 섞인 눈빛을 보냈고, 아내는 어쩔 줄 몰라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떴다. 종일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다 돌아와 이해와 사랑으로 나누던 온기는 불청객인 나로 인해 급속도로 식어버렸다. 안온했던 관계가 차갑게 얼어붙는 건 한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 나 자신을 위해 구차한 변명을 보태자면 당시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치에 다다라 있었다.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몸을 일으켜야 했고, 지구 반대편의 관세 협정과 전쟁 같은 엄중한 국제 정세 속에서 3주 넘게 주말도 없이 일하던 중이었다. 심지어 부모님을 모시고 간 부산 가족 모임 중에도 나는 세 번이나 SRT를 타고 서울로 불려 올라와야 했다.
태수 작가는 저서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 말했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달달한 사랑이나 진한 우정도 결국 건강해야 가능하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겐 부모도 부부도 결국 남이다." 우주에서 가장 소중해 내 생명까지 바칠 수 있을 것 같던 자녀조차, 육신의 고단함 앞에서는 남보다 못한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니, 차라리 남이었다면 '관대한 나'라는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결코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족들이 내 상황을 알아주길, '아빠가 힘드시니 조용히 하자'라는 배려를 먼저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정작 내 한계나 회사의 상황을 가족에게 공유한 적은 없었다. 내가 보고 자란 부모님처럼, 절대적인 헌신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의 이기적인 면모를 발견할 때면 누구보다 신랄하게 속으로 그들의 자격을 운운하며 비판하던 내 모순된 사춘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나는 일방적인 이해를 갈구하며 가족들에게 '삐쳐' 있었던 것이다. 내가 준 배려만큼 되돌려 받지 못하자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있다는 자만심은 서운함으로, 서운함은 폭발로 이어졌다. 임경선 작가는《태도에 관하여》에서 "자식은 부모라는 껍질을 나와야 어른이 된다. 성장은 나의 부모가 나처럼 한낱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내가 그토록 부모님을 밀어냈던 건 그들이 부모라는 역할 뒤에 숨은 불완전한 인간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 역시 '어른인 척' 하는 미숙한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관사를 얻어서 나갈게"라는 유치한 어른의 더 유치한 선언을 내뱉은 나를 향해, 아내는 '가족회의'를 제안했다. 아빠가 왜 예민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왜 서로의 휴식을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거실 등에 불이 다시 켜졌다. 나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의 눈을 맞추며 먼저 고백하였다. 아빠가 감정이 앞섰다는 것, 사실은 회사 일이 조금 버거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너희의 즐거운 대화를 단지 소음으로만 치부해서 미안하다는 것을. 어른이라는 무게를 혼자 짊어지려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냈음을 인정하는 순간, 얼어붙었던 거실의 공기가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완벽한 아빠가 되기보다, 기꺼이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줄 아는 한 인간으로 남는 것. 그것이 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켜야 할 건강한 '태도'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곤 한다. 사랑하는 사이의 연인, 가족, 친구, 직장, 종교에서 묵묵히 견디는 것만이 미덕이라 믿으며 내 안의 폭풍을 숨기지만, 정작 그 폭풍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날 선 파편이 되어 돌아가고는 한다. 가족은 신께서 예비한 나의 완벽함을 우러러보는 관객이 아니라, 나의 서툰 뒷모습까지도 기꺼이 안아줄 동반자이다. 부모라는 권위 뒤에 숨겨진 나의 '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순간, 그 틈 사이로 비로소 진짜 이해와 사랑이 흘러들 것이다.
혹시 지금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당신의 마음이 일렁이는가?
그렇다면 잠시만 숨을 고르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지금 내 마음의 체력은 안녕한가?"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