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한 솔직한 고찰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코로나 이후,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여행을 떠난다. 연휴마다 공항은 역대 최다 인원으로 붐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사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에도 늘 떠나왔고, 이동이 어려웠던 시기에는 유튜버들의 화면을 빌려 대리 만족을 하며 그 욕구를 달랬다. 억눌렸던 갈망이 자유라는 이름표를 달고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모양이다
하지만 여행을 향한 이 열광의 이면에는 씁쓸한 풍경도 존재한다. 학기 중에 가족 여행으로 결석을 하지 않고 개근을 하는 아이들을 '개근 거지'라고 비하하고,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대신 해외로 향하는 2030 세대들을 싸잡아 저렴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도 이 거대한 흐름에 등 떠밀려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년퇴직 후 여행 일정으로 얼굴 뵙기 힘든 부모님이나, 아예 '한 달 살기'라며 여행지로 거처를 옮기는 사람들을 보면 여행은 이제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듯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성정상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떠난다'라는 단어부터가 어쩐지 마음에 붙질 않는다. 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비서'라는 직업 때문일까.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일정은 내게 즐거움보다 스트레스에 가깝다. 말도 통하지 않고 변수만 가득한 해외여행은 특히나 그렇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여행이 싫어질 법한 일들도 꽤 많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필리핀 공항에서는 눈다래끼 때문에 억류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뒷돈을 노린 행태였겠지만, 당시 초보 여행자였던 나는 신혼의 아내를 울리며 혼자 귀국시켜야 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았거나 영어가 유창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입대 전 차인 슬픔을 달래려 찾은 경주에서는 혼자라는 이유로 여관 숙박을 거절당했다. 아마도 내가 나쁜 마음을 먹었을 걸로 보였겠지만 그 정도 슬픔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자전거 여행 중 시골 학교에 텐트를 쳤다가 지역 불량배들에게 여행 경비를 뺏기는 일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등학생에게 당한 것 같다. 지금도 몹시 분하다. 어린 시절 설악산 근처 바닷가 횟집에서 매운탕만 시켰다고 무시당했던 기억까지 보태면, 내가 여행을 멀리할 이유는 이미 충분해 보인다.
그런 내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집어 들었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일상을 살아갈 활력을 얻고 생각을 정리한다는데, 대체 여행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열광하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과 이후 방영된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유창한 언변을 뽐내서 '작가'는 혼자 오래 책상에 앉아 글만 쓰는 직업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 작가도 있구나'라며 편견을 깨 주었던 인물이다. 이후 『살인자의 기억법』과 『 작별인사 』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소설가가 쓴 여행 산문집은 어떤 결일지 콩닥콩닥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작가는 본인을 소설가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여행가'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곳을 다닌 사람이었다. 뉴욕, 캐나다에서 몇 년을 살기도 하고 부산에서도 3년 간 살았다. 뉴욕에서 3년을 살았을 때 아내가 '여행 가고 싶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한 곳에 그렇게 오래 지내는 것은 일상이지 여행이라고 할 수 없는가 보다. 그는 여행의 목적을 인생과 여행을 연결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은 우리가 삶을 진실되게 마주하는 경험이 되며 인생의 행로와 닮았다. 인간은 늘 능력보다 더 높은 곳을 희망하지만, 때로는 부족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과정에서 무엇이든 배우는 존재라는 사실이 여행과 참 닮아 있다.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얻기도 하지만 자신을 지키기도 한다. 중국의 고대 병법서『삼십육계』처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대척점에 있는 난제들로부터 잠시 피하는 것도 여행이 주는 유익일 것이다.
"작가는 우렁찬 목소리보다는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 없는 음성으로 낮게 읊조리는 소심한 목소리에 삶의 깊은 진실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런 웅얼거림을 잘 들으려면 발화자 가까이에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작가는 여행에서 영감을 얻는 일은 드물다고 말한다. 대신 타인의 웅얼거림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인간은 어딘가 조금씩 다르기에 각자가 가진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를 만든다. 이 대목에서 문득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배우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러 떠났던 기도원. 결국 하나님의 음성 대신 '인간적인 간구함만으로는 응답이 없다'는 깨달음만 얻고 돌아왔던 그 시간도, 어쩌면 나만의 민망한 여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으로 본다는 것'이라는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인류는 지구의 승객이라는 비유는 지금은 비록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인생을 여행으로, 인간을 여행자로 비유했던 많은 시인들의 문장을 처음으로 달의 저 편에서 떠오르는 지구를 목도하며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나 가지고 놀법한 작은 구슬 같은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의미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책은 작가가 여행길에서 만난 무수한 타인의 환대와 배려에 고마움을 전하며 끝을 맺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작가가 여행길에서 마주한 무수한 환대와 배려를 되새겨본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길을 안내해 주었던 그 수많은 타인에게 전하는 작가의 고마움은, 결국 우리 삶이 혼자만의 힘으로 지탱되지 않음을 말해준다. 특별히 그는 여행길의 동행자들에게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도한다.
만약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긴 여행지라면, 우리는 모두 같은 행성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서툰 승객들일 것이다. 때로는 계획에 없던 폭우를 만나 발이 묶이고, 믿었던 길에서 길을 잃어 망연자실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막막한 순간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거창한 깨달음보다 곁에 있는 인생 동행자가 건네는 작은 온기와 "괜찮다"는 무심한 위로 한 마디인지도 모른다.
나처럼 여행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이라도, 내 곁의 동행자들과 함께라면 그 불안마저 삶의 한 조각으로 품어 안을 수 있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 만난 이에게 기꺼이 따뜻하게 데운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마음으로, 지금 내 곁을 지키는 소중한 이들을 더 깊이 신뢰하고 아끼고 싶다. 서로의 부족함을 기꺼이 채워주며 원만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걷는 것. 그것이 신이 허락한 지구라는 짧은 여행지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복된 인사이자 유일한 행복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