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환대 -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시골의 외갓집에 가는 게 그렇게 좋았다. 50년대생 장녀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의 어머니는 집안의 살림 밑천이자 어린 동생들을 건사하는 작은 거인이었다. 그 덕에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던 이모와 삼촌은 조카인 나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대접해 주었다. 그들에게 나는 큰 누나의 아들이자, 잠시나마 시골이라는 무대를 함께 누빌 소중한 놀이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그 낙원 같은 곳에서도 통과해야 할 불편한 관문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러 구멍가게에 갈라치면, 느티나무 정자 아래 진을 치고 앉은 어른들의 질문 세례를 견뎌야 했다. 당최 해독할 수 없는 외계어 같은 사투리의 시작은 늘 한결같았다.
"너는 뉘 집 자식이여?"
깍쟁이 서울 아이처럼 표준어로 내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을 또박또박 대답해 보았지만, 그들에게는 닿지 않는 메아리였다.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수문장들은 길을 터주지 않았고, 나는 몇 번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알아낸 정답은 이것이었다. "달성댁, 서울로 시집간 첫째 딸의 아들 누구입니다." 비로소 나는 모험 가득한 구멍가게의 자유 통행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부모의 함자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영포티'면서 안타깝게도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MZ세대'의 일원이다. 1981년에서 1996년까지 태어난 사람을 부르는 밀레니얼(M) 세대와 1997년에서 2011년까지 태어난 Z세대를 합쳐 MZ세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격동의 80년대에 태어나 서울 올림픽을 기억하고 IMF의 서늘함을 피부로 느끼며 자란 나로서는, 이 거대한 범주 안에 묶이는 것이 못내 억울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참 어른처럼 보이지만, 정작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미숙한 세대로 취급받는 그 묘한 끼어있음. 직장에서나, 봉사의 자리, 아이의 학교(나에게는 막내, 누군가에게는 첫째)에서도 나는 늘 한 세대로 묶여 정의되곤 한다.
어느덧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어설프고 덜 된 '어른'의 위치에 서게 되자, 예전에는 무례하다고 치부했던 질문들이 입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어디 사세요? 전공은 무엇인가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어린 시절 그렇게나 '없어' 보이던 질문들을 이제 내가 던지고 또 듣고 있다. 하지만 그 질문들의 결을 가만히 읽어보니, 예전과는 다른 온기가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내 삶의 반경 안으로 그를 초대하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시다. 한 세대가 지난 뒤 마주한 어른들의 질문은 권위적인 탐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가장 정직하고도 서툰 '연결의 시도'였다. 사소한 질문을 매개로 공통분모를 찾고, 상대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긍정하며,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보려는 투박한 애정 표현. 세련된 무관심보다 투박한 간섭이 차라리 인간답다. 관계의 온도는 적당한 거리감이 아니라, 기꺼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용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세련된 매너는 부족했을지언정, 그 질문 안에는 타인의 삶에 기꺼이 개입하려는 뜨거운 진심이 있었다.
문득 이어령 교수의 문장이 떠오른다. "질문은 자기모순적이고 연약한 인간이 이 미스터리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 내가 낯선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그 시절 느티나무 아래 어른들에게 질문이란, 서울에서 온 '낯선 아이'라는 미스터리한 존재와 대면하기 위한 유일한 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질문을 '꼰대 문화'라는 날 선 단어로 밀어내기 전에, 그 문장 이면에 숨은 온기를 먼저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세대를 나누어 선을 긋기보다, 다정한 질문과 대답으로 관계의 벽을 허무는 용기를 내어보는 건 어떨까.
결국 '뉘 집 자식이냐'는 물음은,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공동체 안에 당신의 자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려는 그들만의 서툰 환대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그 모든 참견은, 당신이라는 사람을 알고 싶다는 가장 고전적이고도 진심 어린 환대였을 것이다.
그 시절 어른들의 질문이 그러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