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담긴 글은 길을 잃지 않는다

솔직함은 힘이 세다 -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by Rain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있다. 분명 무언가 쓸 것이 생각나 컴퓨터를 켜고는, 우두커니 앉아 깜빡이는 커서만 애달프게 바라보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실로 감탄을 마지않으며 한 챕터씩 아껴가며 읽는 중이다. 산문 한 편에 500원을 받고 파는 노동자로서의 숭고한 정신도 경이롭지만, 독자를 설득하려는 거창한 진리보다 가족, 연애, 경제적 현실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쌩얼의 문장'들이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과연 이토록 투명하게 내 삶을 대면하며 글을 쓰고 있는가. 매일 아침 배달된 것은 단순히 500원어치의 글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가장 내밀하고도 뜨거운 '오늘'이었다. 읽힐 만한 글을 매일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알기에, 책 한 권으로 엮인 작가의 하루하루를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일은 못내 다정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인간관계는 무척이나 다채롭다. 부모님(복희와 웅이), 친구들, 연인, 심지어 연인의 할아버지까지 주변 인물들이 종이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타인을 사랑하고 관찰하는 이슬아식의 유쾌한 거리감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부터 부모의 성공과 실패를 관찰해 온 것 같은 문장의 생동감은, 작가가 일상을 글로 적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했을지 짐작게 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어떤 문장으로 남길 수 있을까. 그들과 나의 거리는 지금 얼마큼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주 무능해졌고, 그 무능함을 감추지 않기로 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껴안을 수 있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관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진실함이었다. 가족의 민낯, 연인과의 다툼, 미묘한 질투를 숨기지 않는 기록들을 보며 깨달았다. 진실하게 살려는 노력은 예쁜 말만 골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못난 마음까지 솔직하게 꺼내어 상대와 마주 앉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갈림길을 떠올린다. 경찰 공무원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던 시기였다. 실력의 부족은 기대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일일지언정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그 시기를 비겁한 거짓말로 버텼다. "시험 삼아 본 거야", "몇 문제 차이로 아쉽게 떨어졌어" 같은 말들로 민망함을 모면하려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스스로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광기가 시작된다"라고 했다. 그 말처럼 거짓말은 점차 내 삶의 태도를 잠식했다. 늦잠을 자서 늦은 약속에도 "급한 일이 있었다"는 변명으로 모면하는 식이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가장 큰 벌은 그 사람이 진실을 말했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진실은 자유롭지만 거짓은 왜곡된 기억을 진실로 기억해야 했기에 가까운 주위 사람들은 금방 알아채게 된다. 사소한 거짓말들은 나를 부정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거짓말쟁이로 살아가던 나를 잡아준 것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울면서 내게 고백했다. "제발 진실하게 살아달라고, 너를 잃고 싶지 않다"라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손절하면 그만인 나를 위해 친구들은 기꺼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고, 그 눈물은 거짓으로 점철된 내 지난날을 씻어내주었다. 이후 나는 '부끄러움'을 사랑하기로 했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하지 않고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사소한 거짓말조차 멀리하려 애쓴다. 지금도 매일 노력하고 있다. 이제 나는 '솔직히 말해서'라는 관용구조차 쓰지 않는다. 진실이 거짓보다 훨씬 쉽고 자유롭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아무도 청하지 않은 고백을 매일매일 이어갔다. 나의 수치심과 가난과 연애에 대해서.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읽을 만한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구원했다."


작가 이슬아는 자신의 치부와 결핍을 구독자에게 판다고 말하지만, 책을 덮으며 나는 확신했다. 그녀가 판 것은 자극적인 사생활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진실해지기 위해 분투하는 한 인간의 '용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그 용기를 통해 부모와 연인,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보여준다. 그렇게 솔직함은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이제 나는 거짓 뒤에 숨어 거짓말쟁이로 살던 과거를 지나, 부끄러움을 사랑하며 정직의 자유를 누리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완벽해 보이려 애쓰기보다, 못난 마음까지 솔직하게 꺼내어 마주 앉을 때 관계는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 우리 서로 조금 더 솔직해지자. 내밀한 오늘을 투명하게 나누는 그 작고 단단한 용기들이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제대로 껴안을 수 있을 테니까.


솔직함은 힘이 세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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