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생채기를 근육으로 채우는 시간

아내가 가져온 노란 봄 - 최윤미 [마흔부터, 인생은 근력입니다]

by Rain

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방학이 끝난 아이들과 함께 아내의 마음도 분주하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는 5년 만에 새로운 학교로 발령받아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방학 기간 동안 미리 근무할 학교와 교실을 둘러보고, 차로 몇 번이나 오가며 출퇴근 동선을 익혀 두었지만, 낯선 이들과의 첫 만남은 어른에게도 늘 어려운 숙제다.


오히려 짧은 생을 살아온 아이들에게 첫 만남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위치에서 자라고 비슷한 것들을 겪어오며 쌓인 동질감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제부터 친구야"라는 선생님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하나로 묶인 아이들은 그저 서로를 마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른은 사소한 공통점이라도 하나 있을까 싶어 상대를 살피고 또 살피게 된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이토록 어려워하던 아내가 모처럼 밝은 모습으로 퇴근했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좋은 인연이 시작된 모양이다. 아내는 신이 나서 동료 선생님 한 분을 소개했다.


"자기야, 운동에 정말 진심인 선생님이 계셔. 얼마나 진심인지 브런치에 연재하고 책까지 쓰셨대!"


아내는 이미 그분에게 '운동 전도'를 당했다며 폼롤러를 주문하는 중에도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에너지가 얼마나 넘치는지, 운동 지식은 또 얼마나 해박한지, 그런데 몸은 어쩜 그렇게 야리야리하고 멋있는지. 자기도 그 선생님처럼 운동을 해야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아내가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은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앞섰다. 흔히 러닝 좀 뛰거나 배드민턴 구력이 꽤 되는 운동 좋아하는 '아저씨의 오지랖'에 훌렁 넘어가 주문한 저 폼롤러가, 며칠 뒤면 얼마나 많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박혀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한 내게는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무엇에 그토록 진심이면 책까지 낼 수 있을까.'


아내는 그 후로도 자주 그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진심과 교육 전문가로서의 면모, 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근력 운동 예찬론까지. 잘못된 운동 지식을 바로잡아주는 전도사라는 말에 내심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집어 든 그 선생님의 책이 바로 《마흔부터, 인생은 근력입니다》였다. 나는 무언가에 소명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실천적 글쓰기로 옮기는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책은 가볍고 경쾌하게 읽혔다. 먼저 여자 선생님이라는 것에 놀랐다. 남녀를 구분하여 단정 짓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이야기로 먼저 작가를 만났던 터라 근력 운동을 추천한다기에 남자 선생님일 줄 알았다. 미안했고 당황스러웠지만 책의 시작이 너무 재미있어 가볍게 웃고 넘어갔다. 흔한 운동 지침서라기보다 자신의 일상을 세밀하게 복기하며 조언을 건네는 다정한 가이드북에 가까웠다. 나름 운동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며 유행하는 운동은 모두 섭렵해 온 나로서도 놀라운 지점들이 많았다. 인바디를 단순한 체중계 정도로 여겼던 것, 다이어트를 할 때 무조건 탄수화물부터 끊어 탈모와 배변 문제로 고생했던 것, 그리고 '하루 만보 걷기'가 최고의 건강 관리라고 맹신했던 태도들. 나이가 들며 어떻게 몸을 단련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는 작가의 목소리는 '듣기 좋은 잔소리'가 되어 눈으로 들리고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봄을 닮은 노란 책 표지도 내 마음을 운동의 편으로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읽는 내내 의문은 남았다. 지식이 해박하고 운동을 사랑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토록 간절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근력 운동을 권하고 다니는 걸까. 그 답은 작가가 '운동 전도사'가 된 계기를 덤덤히 풀어내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같이 잘 살고 싶어서 글 썼어요."


나는 이 한 문장의 무게 앞에서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삶이 남긴 생채기, 그 상처의 깊이를 감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아, 이 선생님은 살고 싶어서, 정말 살아내 보려고 운동을 시작했구나. 그리고 비로소 살아지게 되었을 때 그 온기를 나누고 싶어 주위에 간절하게 손을 내미는구나.' 자신의 가장 내밀한 속사정과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까지 근력 운동을 강조하는 그 마음의 간절함이 활자를 타고 전해졌다. 운동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옆자리 동료는 '운동 책을 읽으면서 운다고요?'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이 책은 근육을 만드는 법이 아니라, 무너진 삶을 지탱할 지지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책은 마지막까지 교사답게 치밀하고 완벽했다. 글로 다 전달할 수 없는 동작들은 QR코드를 통해 동영상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PT를 받을 여유도 없고 헬스장의 영어로 된 복잡한 기구 사용법이 낯설기만 한 내게, 이 친절한 영상들은 답안지와도 같았다. 놀랍게도 나는 이제 주말 아침마다 그 영상을 보며 몸을 움직인다. 나 역시 '잘 살아야겠기에',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운동 의지를 다시 꺼내 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산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에서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며, 소설 쓰기에도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다.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의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묘사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소설 쓰기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얻었다"


최윤미 선생님의 글 또한 이와 맞닿아 있다.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일도,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일도 결국은 단단한 몸이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책은 말해준다. 나를 돌보는 일에 결코 늦은 때란 없다. 작가의 에필로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운동을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이 책을 감히 추천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늙어가는 일은 순리에 맡겨 두되, 내가 나를 돌보는 일에는 결코 늦지 않는 독자들의 안녕을 기대합니다." - 최윤미 작가, 그리고 선생님.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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