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한 영어 실력으로 대통령 수행 통역 맡은 SSUL
인천공항 서쪽 귀빈실. 전·현직 대통령이나 국가의 3부 요인, 헌법 재판 소장 같은 고위 인사들이 입·출국 시 이용하는 특별한 곳. 2013년 2월의 끝자락 나는 그 곳에 있었다.
복도에는 검은 정장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 여럿이 귀에 꽂은 무전기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팔뚝만한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던 기자는 동선을 파악하는 듯 여기 저기 서성이고 있었다. 한쪽에는 말쑥한 양복차림의 남성이 A4 용지를 돌돌 말아 쥐고 벤치에 앉아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귀빈의 도착시간은 예정보다 20분 가량 늦어지고 있었다. 사뭇 긴장된 분위기. 나도 긴장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 지경이었다. 애꿎은 손목시계만 반복해서 보다가 잠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가보았다. 출입문은 짙게 선팅이 되어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커다란 LCD 패널에 오늘 입국하는 VIP들의 명단이 지나가고 있었다.
H.E. Zivko Budimir, President of Bosnia & Herzegovina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손님은 보스니아의 현직 대통령 내외였다. 유럽 동남부에 위치한 인구 500만 정도의 작은 나라, 우리에게는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한국 탁구의 첫 우승을 기록했던 사라예보로 더 잘 알려진 곳. 한편으로는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2013년 세계에서 9번째로 위대한 모험지로 뽑힌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열릴 한 국제 회의의 참석차 방문하는 대통령 내외는 약 5일간의 일정으로 국내에 머물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의 임무는 방한 일정 내내 귀빈과 함께 하며 그들의 귀와 입이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 내외의 수행통역. 그것이 바로 내가 그곳에 있던 이유였다.
"띠리리리"
적막한 대기실 공기를 가르는 안내 데스크의 전화벨 소리. 거의 동시에 경호원들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진기자도 이미 출입문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내 입술은 더욱 바짝 타 들어갔다. '내가 일반인도 아니고 무려 대통령의 수행통역을 맡게 되다니. 무슨 정신으로 이 일을 하겠다고 지원했을까?!'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고위 인사에게 어떻게 격식을 차려야 할지,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통역을 해야 할지, 혹시 실수는 하지 않을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오만 가지 생각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던 그 때, 이 한 마디로 모든 잡념은 일시에 깔끔하게 정리됐다.
"대통령님 들어오십니다."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리자 맵시 있는 정장차림의 대통령과 세련된 코트를 걸친 영부인이 팔짱을 낀 채 입장하였다.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영화배우나 모델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어울릴법한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바라 보았다. 간단히 사진 촬영을 하고, 마중 나온 관계자들과의 악수를 나눈 뒤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2명의 귀빈이 움직이는데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도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 없이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다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걸까?'
이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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