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어머니! 제가 대학에 가기를 바라시죠?”
“아니, 점심시간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무슨 소리니?”
“제가 지금 대학에 갈 수 있는 열쇠를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이라면 위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단 어머니께 전화를 하기 위해서 공중전화로 달려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구하려고 전화를 할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을 들어 검색어를 입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때는 2003년. 컬러액정이 처음으로 나오고 벨소리가 16화음으로 나면 최고였던 시절이었다.
“정말이니?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
“제 책상에 있는 영자 신문을 한 부만 가져다 주세요! 20분 내로요!”
다행히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이었으므로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고 내 부탁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 마디 거절도 없이 한 손에는 영자 신문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와주셨다.
어머니께서는 마치 감옥에 갇힌 아들에게 귀중한 생필품이라도 전하시듯, 학교 담장 너머로 손을 뻗어 내게 신문을 건네셨다. 덤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철제 펜스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로부터 ‘물건’을 건네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나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 TEEN TIMES라는 청소년용 영자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국내의 다양한 사회∙문화 등의 이슈를 영어기사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의 이슈를 영어로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영자신문으로 어떻게 에세이 과제를 해결했냐고? 설마...?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다. 나는 신문에 나온 기사를 베껴 쓰기로 했다. 당시의 실력으로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고, 나의 형편없는 영어 글쓰기 실력이 들통나면 수시 지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 뻔했다.
선생님은 내가 비현실적인 1학기 수시 입학에 지원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는 대입수능을 치르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영어 에세이를 검토하게 될 사람은 다름아닌 나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주려 하셨던 예전의 그 영어 선생님이었으니까. 나는 반드시 “꽤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글을 써내야만 했다.
나의 실력을, 그러니까 약간의 현실성을 가미하기 위해서 나는 100% 똑같이 기사를 베껴 쓰지는 않았다. 일부로 어려운 단어는 쉬운 단어로 고쳐 썼고 문법적인 오류를 넣기도 했다. 중간에 조금씩 나의 의견을 영작해서 집어 넣기도 했다.
쉬는시간마다 가슴을 졸이며 글을 쓴 결과 선생님께서 주신 16절 갱지 1장을 앞 뒤로 꼬박 채운 에세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께 에세이를 제출하자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어쨌든 영어로 가득하게 채워진 한 장의 종이는 상당히 그럴싸해 보였으니까 말이다.
“내가 이걸 영어선생님께 보여드릴 테니까 평가를 들어보자구.”
선생님께 에세이를 내고 집으로 가는데 온 몸의 힘이 쭉 빠졌다. 하루 종일 엄청나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에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더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집에 와서 어머니를 뵈니 괜히 울컥하고 눈물이 솟았다. 그깟 수시 원서가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지…
비록 궁여지책으로 영자신문을 베껴서 에세이 한 편을 간신히 완성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혹시나 선생님께서 내가 신문을 베껴서 적은 것을 알아보지는 않으실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나의 실력이었다. 정말로 나는 신문이 없었으면 제대로 된 글도 하나 쓸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니까.
나를 테스트하는 선생님이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영어 특기자로 지원하겠다는 녀석의 실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해 보려는 선생님의 행동은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실력으로 외국어 특기자 전형에 지원하려는 내가 이상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 조회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나를 교실 앞 선생님 책상으로 부르셨다. 비둘기색 철재 책상에 앉아계시는 선생님을 마주하는 것은 늘 긴장되는 일이었다. 이내 선생님께서 입을 열어 내게 어제의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셨다.
“영어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너 말이야…”
-다음 편에 계속-
Never Give-up Never Stop.
That's NGNS spirit.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ngnsacademy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