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인간 세계를 구하는 자 ‘무나카타’

<스즈메의 문단속>(2022)

by 박신영

전통과의 조우 - 무나카타와 천황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국의 폐허를 찾아다니며 열려버린 뒷문을 찾아 닫는 토지시(閉じ師) 무나카타 소타(宗像草太)와 대지진의 생존자이자 현재는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와토 스즈메(岩戸鈴芽)에 의해 스토리가 전개된다. 일본열도를 재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뒷문을 찾아 닫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토지시의 성이 ‘무나카타’라는 점에서 특히 일본 신화와의 연계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신화에서 무나카타의 세 여신은 스사노오의 자식으로 태어나는데, 그 탄생 과정에는 스사노오뿐 아니라 일본 천황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아마테라스 역시 관여한다. 그리고 무나카타 세 여신은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 여겨지는 천황에 봉사하는 신이라는 전승도 전해진다. 신화에서부터 이어진 무나카타와 황실과의 관계는 <스즈메의 문단속>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신화의 내러티브를 통해 천손을 돕는다는 것은 국가 즉 천황을 돕는 것이며,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봉쇄함으로써 국가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무나카타는 천황을 위해 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작품에서 토지시로 활동 중인 무나카타 소타는 요석이 되어 도쿄의 뒷문 속 저세상에서 그 역할이 끝나버리게 된다.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를 막고자 꽂아놓은 두 개의 요석이 모두 뽑히면서 도쿄는 대지진의 위험에 노출된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소타와 스즈메의 눈에는 보이는 거대한 미미즈가 도쿄 상공을 뒤덮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한다. 그제야 소타는 자신이 ‘의자’의 모습으로 바뀐 그 순간 요석으로서의 역할도 부여받았음을 인정하게 되고, 스즈메는 요석이 된 소타를 미미즈에 내리꽂아 도쿄를 대지진의 위기에서 구한다. 도쿄의 지하 폐허에 자리한 도쿄의 뒷문을 뒤로하고, 밖으로 빠져나온 스즈메의 눈앞에 나타난 광경은 의미심장하다. 도쿄의 뒷문은 바로 천황의 거처인 황거 아래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일본의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폐허의 뒷문을 찾아 다니던 토지시 무나카타 소타가 황거 아래 자리한 뒷문 안에서 요석이 된 것은 다시 말하면 천황을 지키는 것이다.


“자네가 꽂지 않았으면 어젯밤 백만 명이 죽었어. 자네는 그걸 막은 거야.”

『스즈메의 문단속』p.230


황실과의 깊은 인연을 지닌 ‘무나카타’가 스스로 요석이 되어 황거 아래에 자리한 뒷문 속 저세상에 꽂힌다. 그리고 스즈메가 그 뒷문을 닫은 것은 백만 명의 생명 즉 일본을 구한 행위이다. 작중의 ‘무나카타’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일본의 고대 씨족인 ‘무나카타’와 중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미즈’와 ‘히미즈’


 작품 속에서 대지진을 일으키는 존재로 ‘미미즈’가 등장하는데, 일본어로 미미즈는 지렁이를 뜻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왜 거대한 지렁이인 ‘미미즈’로 그려냈을까. 소타는 도쿄의 대지진을 막기 전, 도쿄에 존재하는 뒷문의 위치를 찾기 위해 자신의 자취방에 들러 자료를 살펴본다. 그중 오래전 도쿄 대지진 때 토지시가 꽂은 요석을 찾기 위해 『토지시의 비전 초록』이라는 제목의 책을 펼치는데, 거기에는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의 모습이 마치 용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오나마즈(大鯰)’ 즉 거대한 메기가 지진을 일으킨다고 믿기도 했는데, <스즈메의 문단속> 속에 등장하는 『토지시의 비전 초록』에서는 메기보다는 용에 가까운 형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 작품에서는 지진을 일으키는 존재를 거대한 지렁이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미미즈’와 함께 등자하는 ‘히미즈’와의 관계를 따져보자.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히미즈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수면이 빛나고 있네. 그렇게 생각한 직후 금색으로 빛나는 실 같은 게 소리 없이 수면에서 떠오르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손가락에 잡힌 듯 공중으로 쓱 뻗어나갔다.

『스즈메의 문단속』p.35


 ‘금색으로 빛나는 실’이라는 묘사에서 마치 긍정적인 힘을 지닌 듯 생각하기 쉽지만, 하늘로 솟구치는 미미즈를 다시 땅으로 끌어 내리는 역할을 하는 히미즈 역시 대지진을 일으키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중정 수면 여기저기에서 금색 실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 끝을 올려다보니 문에서 뿜어져 나온 탁류가 몇 갈래로 나뉘어 하늘을 뒤덮고 있다. 마치 문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끝에서 거대한 적동색 꽃이 활짝 핀 것만 같다. 금색 실은 그 꽃에 쏟아지는 샤워 물처럼 보였다. 이윽고 천천히 그 꽃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스즈메의 문단속』pp.35-36


 히미즈가 하늘로 솟구치는 미미즈를 다시 땅으로 끌어 내리는 과정에서 미미즈가 땅에 부딪히는 충격파로 대지진이 발생한다. 히미즈는 일본어로 두더지를 의미하는데 이 역시 지렁이와 같이 땅속 동물이다. 즉 <스즈메의 문단속> 작품에서 지진은 미미즈와 히미즈의 대결로 발생하는 것이다. 땅속 동물 즉 땅의 신인 지신(地神)들의 대결에 의해 대지진이 발생하고, 그 피해는 지상 세계의 인간들이 입는다. 그런데 토지시가 뒷문을 찾아 닫음으로써 대재앙을 막는다는 설정을 통해 미미즈와 히미즈라는 지신 대 지신의 대결 장소를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으로 옮김으로써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막는 구도이다. 특히 뒷문을 닫을 때 소타가 읊조리는 기도문을 통해 미미즈와 히미즈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시여. 머나먼 선조의 고향 땅이여. 오래도록 배령받은 산과 하천이여. 경외하고, 경외하오며…… 돌려드립니다……!

『스즈메의 문단속』pp.142-143


소타가 읊조리는 기도문의 대상은 ‘히미즈’이다. 즉 황폐해지고 버려진 폐허에서 생겨난 탁류인 미미즈를 히미즈에게 돌려줌으로써 그 땅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 세계를 구하는 자 ‘무나카타’


그렇다면 인간 세상을 구하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아마테라스에게서 천황을 도우라는 명을 받은 ‘무나카타’이다. 일본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 세계에서 지상 세계를 의미하는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葦原中国)는 종종 횡포한 신이 날뛰는 세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의 우케이 이후, 스사노오는 횡포한 성격을 드러내며 다카마노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결국 다카마노하라에서 추방된다. 지상으로 내려온 스사노오는 야마타노오로치라는 거대한 괴물에 고통받는 지상의 인간을 돕고, 야마타노오로치 몸에서 나온 구사나기노쓰루기(草薙剣)를 아마테라스에게 헌상한다.


신화 상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은 야마타노오로치이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인간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는 대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이다. 신화에서 스사노오가 괴물을 물리쳐 인간 세상을 이롭게 했다면,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스사노오의 자손에 해당하는 무나카타가 횡포하게 날뛰는 미미즈를 가두고 인간 세상을 지킨다. 이러한 서사구조에는 일본 신화의 무나카타 3신과 관련된 전승과, 일본 황실과 무나카타의 관계가 중층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아마테라스로부터 천손을 도우라는 명을 받은 ‘무나카타’가 횡포한 지신(地神)들이 인간 세상에서 날뛰는 것을 제압함으로써 인간 세상을 지킨다. 이러한 구도를 이해할 때 비로소 뒷문을 닫는 토지시의 성이 ‘무나카타’라는 점을 납득할 수 있다.




일러두기


<스즈메의 문단속>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시작으로 소설책으로도 출간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중심으로 분석하되, 자세한 묘사 및 대사 등은 소설책을 참고로 하고 있다. 따라서 전반적인 스토리를 서술하는 경우에는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소설책에서 인용한 부분은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작품의 대사 및 내용 인용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2023)



주요 신명(神名) 인명(人名) etc.

야마타노오로치: 주로 머리가 여덟 개 달린 거대한 뱀과 같은 형태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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