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1986)
현대사회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서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이 바로 ‘제국주의’이다.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를 지배하는 쪽과 지배당하는 쪽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제국주의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김윤아(2005)는 과거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섬나라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제1세계 국가들까지 무릎 꿇게 했던 영광의 시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공공연하게 말해지지는 않아도 그런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 일본인들 의식 저변에 깔려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내에서도 야마구치 이즈미(山口泉, 1997), 오스기 시게오(大杉重男, 2001) 등 작가나 평론가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속에 녹아있는 파시즘에 대한 지적도 있다. 이처럼 근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며 국민 교육에 이용된 신화적 이미지와 그 잔상은 여전히 현대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대적 시선에서 신화에 대한 해석과 변용이 이루어진 점을 고려하면 신화 속에서 먼저 근대 제국주의의 표상을 찾아내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근대 천황제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된 『고사기』 신화에는 ‘다카마노하라(高天原)’라는 천상 세계가 신들의 주요 무대 중 하나로 등장한다.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대(神代)에서 인간의 세상인 인대(人代)로 전환하는 과정이 바로 ‘천손강림’이다. 다카마노하라의 주요 신인 아마테라스의 자손이 지상 세계인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에 내려와 다스리고, 그 혈통이 이어져 천황가로 연결된다. 이러한 스토리가 근대 천황제를 떠받치는 주요 논리로 작용한 만큼 신화 속 ‘다카마노하라’라는 세계에 내재 되어 있는 근대 제국주의적 요소를 찾아내고, 나아가 현대문화 콘텐츠 안에서 그와 유사성을 띠는 신화적 요소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애니메이션 속의 근대 제국주의의 잔상을 읽어내 보자.
물론 감독이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 혹은 어떠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에 적용했는지는 감독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감독의 속내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품에 나타난 세계관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중에 작품 안에 발현되어 현대에도 여전히 전파되고 있는 근대 제국주의적 요소들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문화의 비판적 수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원작, 각본, 감독을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맡았으며, 그의 첫 오리지널 각본이기도 하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 역시 잘 드러났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미야자키 감독이 ‘라퓨타’라는 이름을 따온 것이 바로 『걸리버여행기』라고 알려져 있다. 18세기 초에 간행된 『걸리버여행기』는 어릴 적 필독 동화로 읽을 때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는 판타지 정도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사실은 당시 영국 사회와 인간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풍자소설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천공의 성 라퓨타》가 단순히 판타지적인 천공의 도시로만 설계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멸망한 제국 라퓨타 라는 세계가 등장한다. 과거 비행석과 고도의 과학기술로 제국을 건설한 라퓨타는 떠다니는 도시로 지상을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제국은 멸망하고 떠다니는 성 라퓨타는 버려져,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힌 공간이 되었다. 자신이 라퓨타의 후손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시타는 라퓨타를 되찾아 라퓨타의 힘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에게 쫓기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를 자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걸이가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비행석이자 라퓨타 왕족의 증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오래전에 라퓨타를 직접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파즈의 도움을 받아 멸망한 제국인 라퓨타를 마주하고, 결국은 라퓨타를 파괴하는 주문을 사용함으로써 제국은 영원히 잠든다. 라퓨타를 파괴하기 전 주인공 시타는 라퓨타가 멸망한 이유가 땅에서 벗어났기 때문임을 밝힌다. 즉 땅을 밟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인간이기에 땅에서 유리된 문명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미지마 하루히코(上島春彦, 2004)는 《천공의 성 라퓨타》작품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낙하’라는 운동역학에 주안점을 둔다. 무라세 마나부(村瀬学, 2004)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특징이 공간적인 높이를 최대한 살린 ‘수직의 미학’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천공의 성 라퓨타》는 이러한 ‘수직의 미학’의 보고(宝庫)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수직적 공간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과 함께 살아가자.
(土に根をおろし、風と共に生きよう)
시타의 대사, 『天空の城ラピュタ』
주인공 시타의 대사처럼 라퓨타는 환경에 대한 지배라는 관점에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야 할 땅, 즉 환경과의 관계에 대한 일차원적인 해석에 그치지 않고, 식민 지배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피지배국과 그 땅에 뿌리 내리지 않은 채 지배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지배국과의 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
라퓨타를 다카마노하라로, 라퓨타의 지배를 받던 지상 세계를 일본 신화 속 아시하라나카쓰쿠니로 치환하여 생각해 보면, 《천공의 성 라퓨타》와 일본 신화 세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세계관을 찾아볼 수 있다. 지배의 당위성, 즉 그 땅과 괴리되어 있는 세력이 그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기본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그려진 라퓨타와 지상 세계의 관계, 일본 신화에서 그려진 다카마노하라와 아시하라나카쓰쿠니와의 관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멸망한 도시를 손에 넣어 다시금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야욕을 통해, 라퓨타라는 공간 그 자체가 멸망 후에도 수직적 관계, 즉 지배 세력으로서의 위치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공간임이 드러난다.
일본이 직접 식민 지배를 한 지역은 아니지만, 마치 라퓨타를 옮겨놓은 것 같은 장소가 베트남 다낭에 존재한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프랑스의 식민 지배하에 놓여 프랑스의 식민 지배와 관련된 문화가 여전히 다수 남아있는데, 그중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한 바나힐이라는 곳이 있다. 해발 1500미터 바나산 정상에 자리 잡은 프랑스 마을인데, 베트남을 식민지 지배하던 프랑스인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바나산 정상에 지은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케이블카를 타고 약 20분을 올라가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산 정상이라는 위치와 그 위치까지 건축자재를 나르며 노동에 동원되었을 피지배자들을 생각해 보면, 그 공간 자체가 근대 제국주의의 표상이다. 산 정상에 자리한 만큼 날씨도 변화무쌍한데, 안개가 잔뜩 낀 모습은 그야말로 구름으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라퓨타의 모습이다. 안개가 걷히고 맑은 하늘이 드러난 모습 역시 시타와 파즈가 도착한 맑게 갠 라퓨타를 연상시킨다.
마치 라퓨타를 연상시키는 식민지배의 잔재인 바나힐이라는 공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로 그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뿌리 내리지 않은 세력의 지배와 그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보인 식민지배국에서의 수직적 공간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 작품에서의 ‘라퓨타’라는 공간, 일본 신화 속의 ‘다카마노하라’ 라는 공간은 지배가 정당화된 제국을 위한 공간으로 설정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라퓨타가 과거 지배하던 지상의 공간, 다카마노하라가 천손을 내려 보내 지배하도록 한 아시하라나카쓰쿠니는 곧 식민 지배를 받는 식민지라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일본의 신화 세계나 일본의 식민 지배에 그치지 않고, 근대에 팽배했던 제국주의의 수직적 공간적 구성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김윤아(2005) 『미야자키 하야오』 살림출판사, p,80
山口泉(1997) 「圧政としてのファンタジー 「想像力のファシズム」 の廃滅のために」『ユリイカ』29(11), 青土社, pp.244-254
大杉重男(2001) 「帝国のアニメ・アニメの帝国 『千と千尋の神隠し』 についての幾つかの感想」『ユリイカ』33(10), 青土社, pp.94-99
上島春彦(2004) 『宮崎駿のアニメ世界が動いた』清流出版, pp.5-33
村瀬学(2004) 『宮崎駿の「深み」へ』平凡社, pp.8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