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 씹는다는 것
일본의 신화가 수록된 《고사기》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술은 다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建速須佐之男命)가 야마타노오로치(八俣大蛇)라는 괴물을 퇴치하는 전승에서 등장한다. 이 술의 경우 술을 빚는다는 표현을 원문에서는 ‘釀’으로 표기하여 이것만으로는 술을 빚는 방식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八塩折之酒’라는 명칭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빚어낸 술이라는 정도의 정보만 알 수 있다. 이후 《고사기》에서 술과 관련된 전승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주아이(仲哀) 천황기의 진구(神功)황후와 관련된 전승이다.
주아이(仲哀) 천황은 서쪽의 나라를 정벌하라는 신탁을 받지만 이를 무시하였기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자 그 부인인 진구황후는 신의 뜻을 받들어 신라로 출정한다. 이후 돌아오는 과정에서 진구황후는 후에 오진(応神) 천황으로 즉위하는 복중에 있던 태자를 출산한다.
황후와 태자의 귀환 과정에 야마토에서 태자의 목숨을 노리는 세력이 있을 것을 염려해 ‘태자는 이미 죽었다’라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고, 황후만 먼저 야마토로 귀환한다. 이후 황후가 야마토 세력을 평정한 이후 태자가 귀환하는데, 먼저 야마토로 돌아와 있던 황후는 태자의 귀환을 기다리며 술을 빚어 바친다.
-《고사기》중권 : 주아이(仲哀) 천황기
진구황후는 태자의 귀환을 기다리며 술을 빚어 바치는데, 후에 오진(応神) 천황으로 즉위하는 태자는 단순히 늦게 귀환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퍼트린 ‘이미 죽었다’라는 소문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 즉 '죽음'으로부터의 귀환이다.
《고사기》의 내용 중에는 우리의 이두나 향찰 처럼 한자의 음을 차용해 표기하는 부분도 있어, 고대어의 발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진구황후가 술을 빚으며《고사기》 노래한 내용에서 ‘迦美祁牟比登波’라는 표기를 통해 ‘가미’라는 발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일본어에서는 술을 빚는다는 의미의 동사는 ‘가모스(醸す)’라는 발음으로 표현된다. 이 ‘가모스’의 오래된 형태로 진구황후의 표현에 등장하는 ‘가미’, 그리고 동사형 ‘가무’는 음식물을 씹는 행위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가미’ 혹은 ‘가무’라는 발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어에서 가무(噛む)라는 것은 씹는 행위, 즉 먹는 행위와 관련이 있는 단어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씹고 먹는 행위 ‘가무’ 혹은 ‘가미’라는 그 행위 자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신성한 행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고사기》에서 일본에서 천황의 조상신으로 여겨지는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와 서로의 물건으로 거래를 해서 자식을 생성하는 '우케이'라는 주술행위 장면이 등장한다. 이 우케이 장면에서도 ‘씹는 행위’가 중요하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스사노오의 검을 셋으로 쪼개어 하늘의 신성한 우물에 씻은 후 씹어서 뱉어낸 숨결에서 세 여신이 생성된다. 또,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아마테라스의 옥 장식을 받아 똑같이 우물에 씻은 후 씹어서 뱉어낸 숨결에서 다섯 남신이 생성된다.
-《고사기》상권 : 우케이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가 서로의 물건을 씹어서 뱉어낸 숨결에 여러 신들이 탄생하는데, 그중에는 후에 지상세계로 강림한 천황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신도 있다.
《고사기》 신화 상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 중 ‘가무’라는 음이 포함된 신이 등장하는데, 천지가 시작될 때 천상 세계인 다카마노하라(高天原)에 나타났다고 전하는 3신 중 가무무스히노카미(神産巣日神)가 있다. 이후 이 신은 후에 오쿠니누시의 전승에서 다시 등장한다.
오쿠니누시가 형들의 질투로 인해 시련을 겪다가 결국에는 불에 타 죽는다. 그러자, 가무무스히노카미가 나타나 오쿠니누시노카미를 되살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고사기》상권 : 오쿠니누시노카미(大国主神)
천지가 시작될 때 가무무스히노카미와 함께 등장해 동일하게 생성의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되어 온 다카미무스히노카미(高御産巣日神)가 있다. 그런데, 오쿠니누시노카미의 전승에서는 가무무스히노카미 홀로 등장해 오쿠니누시노카미를 되살리고자 한다. 여기에는 다카미무스히노카미와는 또 구분되는, 가무무스히노카미가 갖는 ‘가무’ 즉 생명의 의미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이렇듯 일본의 신화에 등장하는 ‘씹는 행위’ 즉 ‘가무’는 신성한 생성 행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다음 글에서는 애니메이션 작품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구치카미자케. 다음 장에서는 입으로 쌀을 씹어서 빚어내는 이 술의 의미를 통해 작품을 들여다보자.
다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建速須佐之男命): 스사노오노미코토, 스사노오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 아마테라스오카미, 아마테라스
가무무스히노카미(神産巣日神): 가미무스히노카미, 간무스히노카미
다카미무스히노카미(高御産巣日神)
오쿠니누시노카미(大国主神): 오쿠니누시
야마타노오로치(八俣大蛇)
주아이(仲哀) 천황
진구(神功) 황후
오진(応神)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