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신(神)이 된 소년

<너의 이름은.> (2016)

by 박신영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장면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은 2016년 여름 일본에서 처음 개봉한 후, 2017년 1월에는 한국에서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두 번이나 재개봉을 해 그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천년 만에 다가오는 혜성’으로 시작된다. 도쿄에 사는 평범한 소년 ‘타키’와 ‘이토모리’라는 지명의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이자 이토모리 마을을 지키는 미야미즈신사(宮水神社)의 세습 무녀인 ‘미츠하’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어느 날부터인가 서로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계속 반복되고,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반응을 보면서, 마침내 꿈이 아니라 서로의 몸과 영혼이 뒤바뀐 것을 깨닫게 된다.


뒤바뀐 상황에서 생긴 일들을 휴대전화 일기장에 서로 메모하면서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혜성’은 지구에 점점 근접해 오고 있었다. 미츠하는 혜성이 떨어지기 전날 타키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향하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타키를 보고 실망한 마음을 안은 채 다시 이토모리 마을로 돌아온다. 서로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현상을 겪은 두 사람은 혜성이 떨어지던 당시의 미츠하와 혜성이 떨어지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의 타키였다. 즉, 둘 사이에는 3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하는데, 미츠하가 도쿄로 찾아가 마주친 타키는 아직 미츠하와 뒤바뀌기 3년 전, 즉 미츠하를 알기 전 상태인 타키였던 것이다.


타키의 시간을 기준으로 사상 최대의 우주 쇼가 벌어지던 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서로의 몸이 바뀌지 않게 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타키가 미츠하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결국 타키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이토모리 마을의 풍경을 단서로 직접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3년 전 혜성이 떨어져 이토모리 마을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미츠하 역시 사망자 명단에 포함된 것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몸을 바꾸어 미츠하에게 혜성의 위험을 알리고자 한 타키는 미츠하가 빚은 술 ‘구치카미자케’를 봉납한 신당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신당에 도착해 미츠하가 빚은 ‘구치카미자케’를 마시자 다시 한번 둘의 몸과 영혼이 뒤바뀐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미츠하의 몸에 들어간 다키는 미츠하의 친구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대피계획을 세우며 고군분투한다. 또 황혼 무렵 기적의 시간에 잠시 마주하게 된 타키와 미츠하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타키가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 깨어나자 이토모리 마을과 미츠하에 관한 기억들이 점점 사라진다.


한편, 타키로부터 혜성 낙하와 이토모리 마을이 처한 위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미츠하는 전력을 다해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자신도 살아남는다. 서로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둘은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과 취업으로 이어지는 일상을 살아가다가 결국은 다시 재회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뒤바뀜 – 역할을 부여하고 완성해 가는 과정


작품 서사의 중추를 담당하는 설정은 남녀주인공의 몸과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이다. 반복되는 뒤바뀜 현상 속에서 두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자.


변화과정은 네 단계에 걸쳐 나타나는데, 첫 번째 단계는 ‘꿈’이다. 처음으로 서로의 몸이 바뀌었을 때 미츠하는 꿈이라 생각하고, 늘 동경하던 도시인 도쿄에서의 생활을 만끽한다. 타키의 몸에 들어간 미츠하는 타키의 아르바이트를 대신해서 하게 되는데, 처음 해보는 서빙 아르바이트에 지쳐갈 즈음, ‘이 꿈 언제 깨는 거야!’라고 외친다. 이 대사를 보면 미츠하 자신은 현재 꿈속에서 다른 사람의 몸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꿈이라고 인지하는 상태는 동경하던 도시 도쿄를 처음 마주했을 때, 상당히 들뜬 목소리로 ‘도쿄다!’라고 말하는 대사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는데, 아직 꿈으로 인식하는 이 단계에서는 당연히 꿈에서 곧 깨어날 것이기에 현실의 자신에 대한 걱정은 딱히 찾아볼 수 없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현실을 인지한다. 서로 몸이 뒤바뀌는 현상이 반복되고, 꿈에서 깨어난 후 주변 친구들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타키와 미츠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꿈의 내용과 미묘하게 달라진 현실 상황을 겪으며, 마침내 꿈이 아니라 실제로 둘의 몸이 뒤바뀐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혼란을 겪은 것도 잠시, 둘은 서로의 생활을 지켜나가기 위해 바뀐 상태에서 생긴 일들에 대해 휴대전화 일기장에 메모를 남긴다. 그렇게 위태위태한 동거가 계속되고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점점 이해해 간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이 두 주인공이 미래를 위해 부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작품 안에서 ‘구치카미자케’라는 술이 등장하는데, 일본어로 ‘구치’는 입, ‘가미’는 씹는 행위, ‘자케(사케)’는 술을 의미한다. 그 명칭 그대로 입으로 씹어서 빚은 술이다. 이 술은 미야미즈신사의 대를 잇는 무녀인 미츠하가 쌀을 입에 넣고 씹은 후, 그것을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빚는다. 완성된 술을 깊은 산속 신성한 곳에 자리한 미야미즈신사의 사당에 바치는데, 미츠하가 빚은 술을 봉납하러 사당에 가는 바로 그날 타키와 미츠하는 또다시 서로 몸과 영혼이 뒤바뀐다. 만약 서로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현상을 통해 두 주인공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성장해 간다는 것이 이 스토리의 주된 테마였다면, 오히려 미츠하가 ‘구치카미자케’를 빚기 위한 신사 의식을 행하는 장면과, 그 모습을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장면에서 둘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둘의 몸과 영혼이 다시금 뒤바뀌는 것은 미츠하가 구치카미자케를 빚는 장면이 아니라 미츠하가 빚은 술을 신에게 봉납하러 사당으로 향하는 날이다. 이것은 그 장소가 향후 타키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즉 타키가 부여받은 역할을 완수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되기 때문이다. 미츠하는 구치카미자케를 빚음으로써 술에 자신의 영혼을 담는 것이 그 역할이라면, 타키에게는 미츠하의 영혼을 담은 술, 즉 구치카미자케가 있는 사당의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신성한 사당을 배경으로 타키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다. 때문에 구치카미자케를 빚는 날이 아닌, 사당에 봉납하러 가는 날에 둘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타키가 짊어진 역할을 완성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더 이상 서로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타키가 미츠하에게 전화를 걸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미츠하가 타키를 직접 만나기 위해 도쿄로 상경했을 때도 전화를 거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의아한 점이 있다. 이 둘은 서로의 전화번호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 왜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벌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전화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서로의 세계에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마지막 단계에서의 역할 완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지 않을까. 더 이상 몸이 뒤바뀌지 않게 되자 홀가분하기는커녕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 타키는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3년 전 혜성이 떨어져 이토모리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게 되고 주민들 대부분이 숨진 것을 확인한 타키는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찾아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미야미즈신사의 사당으로 향한다. 미츠하와 몸이 바뀌었을 당시의 기억에 의지하며 사당을 찾아 헤매던 타키는 마침내 사당을 찾아내고, 그 사당 안에서 3년 전 미츠하가 빚고, 미츠하의 몸에 들어간 타키가 사당에 봉납했던 ‘구치카미자케’를 발견한다. 미츠하가 빚고 타키가 봉납한 그 술을 타키가 마시면서 마지막 기회가 성사된다. 이 기회를 통해 타키는 미츠하에게 다가오는 혜성의 위험을 알리고, 마을 주민들을 죽음에서 구하는 역할, 즉 타키에게 부여된 역할이 완성되는 것이다.



구치카미자케 – 무스비:연결


작품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구치카미자케’라는 술이다. 쌀을 입에 넣고 씹은 후, 사람의 타액을 통해 발효시켜 만드는 술로 특별한 발효기법 없이도 만들 수 있어서 가장 오래된 주조법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류큐국(琉球国)에는 처녀들이 쌀을 씹어서 만드는 미인주(美人酒)라는 것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류큐, 지금의 오키나와에서는 근대 초기까지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구치카미자케’가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술로 등장한다. 주인공 미츠하는 이토모리 마을을 지키는 미야미즈신사의 대대로 내려오는 세습 무녀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동생 요츠하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는 여고생이기도 하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미야미즈신사의 무녀였으며, 이제는 손녀인 미츠하와 요츠하가 대를 이어 이토모리 신사의 주요 행사를 수행한다. 미야미즈신사의 주요 행사 중 하나가 바로 구치카미자케를 빚어 산속 깊이 자리한 사당에 봉납하는 것이다.


미츠하가 쌀을 씹어 빚은 구치카미자케를 사당에 봉납하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산을 오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구치카미자케를 빚은 것은 미츠하였지만, 사당에 봉납하러 가는 것은 미츠하 몸에 들어간 타키다. 이 장면에서 할머니는 일본어로 ‘연결’이라는 의미를 갖는 ‘무스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데,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관통하고 있는 매개체인 구치카미자케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그 땅의 씨족신을 옛말로 ‘무스비’라고 불렀지.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어.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전부 신의 힘이야. 우리가 만드는 꼬임줄도 그러니까, 신이 하는 일,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나타내는 거지. 모여서 형태를 만들고, 꼬고 엮이면서 때로는 돌아갔다가 끊어지기도 하고, 또다시 이어지고 그것이 ‘무스비’ 그것이 시간.
물도 쌀도 술도, 사람의 몸에 들어간 것이 정신과 결합하는 것도 ‘무스비’. 그러니 오늘 이 봉납은 신과 인간을 잇기 위한 소중한 의식이야.
구치카미자케야. 신체(神体)에 바치는 거야. 그건 너희의 반쪽이니까.


미츠하의 할머니는 물도 쌀도 술도, 사람의 몸에 들어간 것이 정신과 결합하는 것도 ‘무스비’라고 이름 붙이고, 술을 봉납하는 것은 ‘신과 인간을 잇기 위한 소중한 의식’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과 신의 연결’을 완성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바로 ‘구치카미자케’라는 것이다. 거기에 일본 신화에서 '씹는' 행위의 의미가 생명의 부여라는 신성한 의미를 가지는 것과 빗대어 보면 구치카미자케의 의미는 더 명확해진다.


특히 ‘사람의 몸에 들어간 것이 정신과 결합’한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갔던 것을 내 몸에 흡수함으로써 그 사람의 정신과 결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이 타키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미츠하의 몸에 들어가기를 염원하며, 미츠하가 빚은 구치카미자케를 마시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신이 된 소년 : 이토모리 마을을 구한 영웅 ‘타키’


다시 <너의 이름은.>으로 돌아가 보자. 미츠하와의 뒤바뀜 현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자 타키는 미츠하가 사는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이토모리 마을은 3년 전 혜성과의 충돌로 마을 전체가 파괴되어 없어지고, 마을 주민들 역시 대부분 희생된 것을 확인한다. 즉 미츠하가 사는 세상과 타키가 사는 세상 사이에는 3년이라는 시간 차가 존재했음이 밝혀지고, 타키는 3년 전의 그 사고에서 미츠하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미츠하의 몸에 들어가길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사당에 봉납한 술, 미츠하의 반쪽이 담긴 ‘구치카미자케’를 마시는 것이다. 그 술을 마시고 다시 한번 미츠하의 몸에 들어간 타키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혜성의 위험을 알리며 대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황혼 무렵 기적의 시간, 찰나 같은 순간에 드디어 미츠하 본인과 마주하게 된 타키는 미츠하에게 마을에 닥칠 위험에 대해 알린다. 이후 타키의 뜻을 이어받은 미츠하가 우여곡절 끝에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결국 혜성의 충돌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구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츠하의 몸에 들어갔던 것을 타키의 몸에 흡수함으로써 미츠하와 타키의 정신이 결합하고, 전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타키와 미츠하의 결합과 사건 해결에 치중된 나머지 간과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구치카미자케를 누구에게 바쳤는가’라는 점이다. 구치카미자케는 작품 속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시피 미야미즈신사에서 모시는 신에게 바치는 술이다. 미츠하의 반쪽 즉 정신을 담아 빚은 후, 미야미즈신사의 신에게 바친 그 술을 ‘인간’인 타키가 망설임 없이 마시고 만다. 다시 말하면 타키는 스스로 신이 된 것이다. 타키라는 존재는 단순히 도쿄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을 넘어선 차원이 다른 신적인 존재인 셈이다.


<너의 이름은.>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만나야만 하는 사람을 찾아 헤맨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황혼 무렵 기적처럼 찾아온 두 사람의 찰나 같은 만남의 시간이 끝나자, 서로의 이름을 잊게 된다는 전개를 통해 제목의 표면적인 의미가 더욱 부각 된다. 하지만 작품 서사를 관통하는 질문은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라기 보다 ‘너는 누구냐!(お前は誰だ/誰そ彼)’라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서로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타키가 미츠하의 노트에 남긴 메모가 ‘너는 누구냐!(お前は誰だ)’이다. 또, 학교 수업 중 고전 시간에 선생님이 황혼무렵에 대해 설명하는 표현 역시 ‘당신은 누구인가(誰そ彼)’라는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다. 이처럼 곳곳에 절대자 즉 신적인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질문이 숨어있다. 이것은 곧 타키의 존재를 의미한다. 신에게 바친 구치카미자케를 망설임 없이 마셔버리고, 스스로 신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내는 신적인 존재, 그것이 작품 속에 숨겨진 타키의 본질이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의 타키의 역할을 통해 전체 스토리가 하나의 신화적 영웅서사로 구성되어있다. 대게 주인공의 탄생과 성장, 여정, 시련, 시련의 극복과 세상의 구원, 회귀로 전개되는 영웅서사의 플롯을 <너의 이름은.>의 타키에게 적용해 보자.


평범하게 살아가던 고등학생인 타키와 미츠하가 갑자기 서로 몸이 뒤바뀌는 현상을 겪기 시작하는 것을 주인공의 탄생, 그리고 서로 그 현상에 적응해 가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성장 과정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미츠하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타키가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 나서는 것이 영웅으로서의 여정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기억 속 풍경에 의지하며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 나섰지만, 혜성 충돌로 이미 마을은 전멸한 후였다.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냈지만, 미츠하와는 만나지 못하는 시련이 닥친 것이다. 타키는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사당을 찾아 미츠하가 빚어 신에게 바친 술, 구치카미자케를 마시고, 다시 한번 미츠하의 몸에 들어가 시련을 극복한다. 미츠하의 몸에 들어간 타키가 친구들에게 혜성 충돌의 위험을 알리고,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황혼 무렵 찰나의 시간에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 마주한 후,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바통은 미츠하에게로 넘어간다. 여기서 미츠하의 역할은 신적인 존재 즉 타키가 알려준 위험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신(神)의 언어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무녀의 역할이다.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고, 이토모리 마을의 구원이라는 타키의 역할이 완성되자, 타키는 이토모리 마을이나 미츠하에 대한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원래의 생활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타키의 영웅서사가 완성된다. 이처럼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표면적으로는 동시대 서로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소년과 소녀가 신비로운 교류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성장스토리이자, 동시에 그 심층에는 신적인 존재에 의한 영웅서사를 내포한 작품이다.



일러두기

작품의 대사 인용은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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