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거대한 존재의 폭력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by 박신영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에서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캐릭터로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단연 ‘가오나시’를 꼽을 수 있다. 가오나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관련된 해설이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담집 등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표면적인 주인공은 치히로와 하쿠로 보이지만, 주요 사건의 중심에 등장하여 작품의 서사를 이끌고, 주인공 치히로의 성장 과정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가오나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주인공들에 대한 관찰 못지않게 가오나시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중요하다. 가오나시의 팽창을 제국주의적 팽창의 표상으로 보는 해석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가오나시 캐릭터의 변화과정을 제국주의적 팽창과 수축, 그리고 《고사기의 ‘하라에(祓)’라는 요소를 복합적으로 적용해 다층적으로 분석하면서 읽어보자.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속 ‘거대’한 캐릭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는 ‘거대’한 존재가 종종 등장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거신병(巨神兵)이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제국인 토르메키아가 정복과 탄압을 지속하자 그에 맞서기 위해 고대의 괴물인 거신병을 부활시키고자 하는데, 거신병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한다.


구세계의 괴물, 불의 7일간 세계를 다 태워버렸다.
(旧世界の怪物、火の七日間で世界を焼きつくした)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2) 대사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제국의 공중도시인 ‘라퓨타’의 실재를 확인시켜준 존재로 거대한 로봇이 등장한다. 라퓨타에서 지상으로 낙하한 거대 로봇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로봇 병사
(すさまじい破壊力を持つロボットの兵隊)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대사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거대’해지는 캐릭터는 <모노노케히메(もののけ姫)>(1997)에서도 등장한다. 이전의 거대한 로봇과는 달리 인간에 의해 희생되는 시시가미는 처음부터 크기가 거대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인면(人面)에 짐승의 몸,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뿔이 있는 신비로운 존재의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다타리가미’ 즉 재앙신이 되어 버린 멧돼지신과 큰 부상을 입은 늑대신의 생명을 빨아들인 시시가미는 점점 몸을 부풀리던 중, 인간이 쏜 총에 맞아 목이 잘린다. 그러자, 시시가미의 몸은 점점 거대해지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시시가미의 몸에 닿기라도 한 생명체는 그대로 생명을 잃게 된다. <모노노케히메>에 등장한 시시가미의 경우, 앞의 두 작품에 등장한 거대 로봇과는 달리 처음부터 거대한 몸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재앙신이 된 멧돼지신과 늑대신의 목숨을 거둔 후부터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인간이 쏜 총포에 목이 날아가면서 남은 몸체는 걷잡을 수 없이 증식되며 퍼져나간다. 목숨을 거두는 죽음의 행위를 통해 거대해지기 시작한 시시가미는 인간이 쏜 총, 즉 폭력과 만나 파괴되고, 이는 더욱 큰 파괴를 불러오는 재앙으로 확산된다. 이렇게 거대해지며 주변의 생명을 앗아가는 시시가미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폭(原爆)’ 그 자체라 표현한다. 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 ‘거대’한 캐릭터는 제국의 병기, 파괴, 폭력 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도 거대해지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가오나시’이다. 가오나시 캐릭터가 거대해지면서 폭력과 파괴를 동반하는 것은 이전의 거대한 캐릭터들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가오나시가 이전의 ‘거대’한 캐릭터들과 다른 점은 거대하고 폭력적이며 파괴적인 캐릭터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변화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가오나시의 거대화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대화하는 것은 시시가미로 질려버렸어요. 결국 파고들자면, 그건 원폭의 이미지밖에 없죠.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 실제로 여자아이의 마음속에 리얼리티가 있는 세계로만 만들고 싶었어요.
(巨大化するのはシシ神でまいったんですよね。結局つきつめていくと、あれは原爆のイメージしかないんですよ。だから、今回はそうじゃなくて、実際、女の子の心にとってリアリティのある世界だけにしたかったっていう)

宮崎駿(2002) 『風の帰る場所 ナウシカから千尋までの軌跡』p.215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대화하는 것은 시시가미로 질려버렸다’고 말하면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거대’해지는 가오나시를 그려냈다. 하지만, 가오나시의 서사는 폭력과 파괴의 상징인 ‘거대화’에 그치지 않고, 그 이후, 센과의 관계를 통해 집어삼킨 것들을 모조리 토해내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변화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오나시가 음식이나 종업원들을 끊임없이 먹어 치우며 거대하게 팽창하는 모습에 대해 박규태(2005:70-71)는 ‘제국주의적 근대일본의 팽창주의를 상징’하는 과잉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이는 가오나시라는 캐릭터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 사회를 읽어내는데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오스기 시게오(大杉重男, 2001)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에 대해 ‘실제 미야자키가 상정한 것은 전전(戦前)의 일본, 제국으로서의 일본이며, 유야라는 목욕탕은 거대한 유곽을 연상시킨다’라며 작품의 배경을 ‘제국’이라 말한다.



‘가오나시’ 에피소드와 하라에(祓)


가오나시가 등장하는 장면은 오쿠사레가미 에피소드와 함께 나타난다. 비가 오는 날 밖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가오나시를 발견한 센이 문을 열어두고, 그 문으로 가오나시가 신들의 온천장인 유야(油屋)로 들어온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유바바가 ‘비에 섞여 이상한 것이라도 들어온 건가’라며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때 등장하는 것이 오쿠사레가미 즉 오물신이다. ‘오물신의 느낌이 아니었는데’라며 유바바는 의아해하지만, 당장 오쿠사레가미의 목욕부터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모두 집중한다. 그리고 오쿠사레가미의 목욕 후 바닥에 남은 사금을 보고 유야의 종업원들이 환호하는 것을 본 후, 가오나시는 손에서 사금을 만들어내어 종업원들을 꾀어낸다. 가오나시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금을 받기 위해, 종업원들이 줄지어 음식을 대령한다. 끊임없이 음식을 먹어 치우며 욕망을 채워나가던 가오나시는 점점 포악한 모습으로 변하면서 급기야 종업원들도 집어삼키기 시작하며 폭주한다. 그러다 센이 오쿠사레가미에게 받은 ‘쓴 경단’을 조금 떼어 가오나시의 입에 넣자 그동안 삼켰던 종업원들과 음식물들을 모두 토해내고 가오나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과정은 《고사기》에서 스사노오의 다카마노하라 방문과 하라에를 하기에 이르는 과정과 상당히 닮아있다. 가오나시 에피소드 중 몇몇 장면에서는 《고사기》에서 스사노오의 하라에 장면과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각 장면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자.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가 다스리는 다카마노하라를 방문하는데, 이때 아마테라스는 동생 스사노오가 필시 이 나라를 빼앗으러 오는 것이라고 말하며 전투 태세를 갖춘다. 가오나시의 경우 신들의 온천장인 유야를 방문하는데, 처음에는 주변에서 맴돌 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다 센이 열어준 옆문을 통해 들어가는데, ‘비에 섞여 이상한 것이라도 들어온 건가’라는 유바바의 대사를 통해 가오나시의 유야 입성은 정상적인 방문이 아님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처럼 스사노오와 가오나시는 각각 방문한 다카마노하라와 유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다카마노하라로 진입한 스사노오는 나라를 빼앗으려는 나쁜 마음이 없음을 주장하며 아마테라스와 우케이를 하고, 우케이에서 자신이 이겼다며 난폭한 행동을 일으킨다. 유야 안으로 들어간 가오나시는 손에서 만들어낸 사금으로 종업원들을 끌어들이고, 음식과 종업원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사노오 뿐만 아니라 가오나시 역시 내재 되어 있던 폭력성이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폭력성이 드러난 결과 아마테라스는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는데, 다른 여러 신들이 합심하여 아마테라스를 동굴 밖으로 다시 끌어내고 스사노오를 응징한다. 가오나시 에피소드의 경우 유야가 아수라장이 되자 센이 나서서 강의 신으로부터 받은 ‘쓴 경단’을 이용해 가오나시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


폭력성의 결과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은 《고사기》전승의 경우 스사노오에 대해 많은 배상과 함께 머리카락, 손톱 발톱을 자른 후 다카마노하라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가오나시 에피소드에서는 가오나시가 집어삼켰던 종업원과 음식들을 다 토해내고, 센을 따라 유야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일종의 하라에가 완성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침략의 서사 : 스사노오 전승과 가오나시 에피소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스사노오의 다카마노하라 방문 전승과 가오나시 에피소드에는 ‘하라에’라는 측면에서 장면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두 서사에는 ‘침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고사기》에서 이자나기의 ‘미소기’에 의해 생성되는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는 이자나기에 의해 각각 다스릴 나라가 정해졌다. 아마테라스에게는 다카마노하라(高天原), 스사노오는 우나하라(海原)를 다스리라고 분치(分治)를 명한다. 그런데, 스사노오가 다카마노하라를 방문하자, 아마테라스는 즉시 싸움의 태세를 취한다. 즉, 스사노오는 다카마노하라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유야에 있으니까 안되는 거야. 거기서 나오는 게 좋아.
(あの人、油屋にいるからいけないの。あそこを出た方がいいんだ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대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센의 대사이다. 가오나시 역시 유야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또, 다른 신들이 들어오는 정문이 아니라, 센이 실수로 열어준 옆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습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정상적이지 못한 등장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스사노오와 가오나시 둘 다 방문한 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들어오고, 폭력성을 드러내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팽창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침략’과 ‘제국 팽창’의 표상이다. 즉, 스사노오의 하라에와 가오나시 에피소드는 단순히 장면이 유사한 것뿐 아니라 침략의 서사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제국주의적 팽창’의 표상인 것이다.



하라에 후의 가오나시: 제국과 포스트제국의 표상


점점 더 거대하고 포악해지던 가오나시가 센이 ‘쓴 경단’을 먹이자 집어삼켰던 종업원들과 음식을 다 토해내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즉, 가오나시는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통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그렇다면 치유와 회복으로 가오나시의 서사는 끝일까? 작품 속에서는 거대하고 포악한 가오나시의 존재감이 워낙 강했던 터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가오나시의 역할은 마무리된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가오나시의 서사를 더욱 깊이 읽어내기 위해 ‘하라에’ 즉, 죄를 털어내고 회복한 이후의 가오나시의 모습도 한번 살펴보자.


센이 내민 ‘쓴 경단’을 삼킨 가오나시는 마구잡이로 집어삼킨 음식과 종업원들을 차례로 토해낸다. 그 과정에서도 센에 대한 가오나시의 집착은 계속되고, 결국 센을 쫓아 유야 밖으로 나온다. 하쿠를 구할 방법을 찾아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의 집에 가기 위해 유야에서 나온 센은 제니바의 집까지 가오나시와 동행하게 된다. 유야에서 나온 직후까지는 센에 집착하며 쫓아오는 모습을 보이지만, 유야에서 집어삼킨 종업원을 마지막으로 뱉어낸 이후부터는 가오나시에게서 더 이상 포악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제니바의 집에 도착한 후에는 다른 이들과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함께 뜨개질을 하는 모습은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주변 이들과 교류하고 협동하는 가오나시의 모습을 통해 유야에서 포악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포악하고 팽창한 가오나시의 모습에서 ‘제국’의 팽창을 읽어냈다면, 모든 것을 토해내고 수축한 가오나시를 통해 이른바 ‘포스트제국’ 즉 제국 이후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 제니바의 집에 도착한 후 가오나시가 보여주는 모습은 유야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상당히 이질적이다. 다소곳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이나 뜨개질하며 협동하는 모습에서 이전의 포악하고 파괴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팽창과 수축이라는 변화를 그렸지만, ‘가오나시’라는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근대 제국주의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해체된 듯 보인다. 하지만 패권주의에 물든 근년의 국제정세를 볼 때,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가오나시는 수축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화합과 협동을 선택했다. 이것이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이상적인 포스트제국의 모습이지 않을까.



참고문헌

박규태(2005)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일본 –소녀와 마녀사이-』 살림출판사, pp.70-71.

大杉重男(2001) 「帝国のアニメ・アニメの帝国」 『ユリイカ』 33(10), 青土社, pp.94-99.

宮崎駿(2002) 『風の帰る場所 ナウシカから千尋までの軌跡』文藝春秋,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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