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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Jun 03. 2024

지금도 충분하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잠들지 못하는 밤.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내일은 다가오는데 오늘의 잠투정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괜히 자기 전에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나만 빼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 기분을 느낄 때면.. 오늘도 일찍 잠들기는 글러먹었다.


인생을 비교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만
비교할 때면 실패한 기분이 든다


비영리 회사를 운영하는 브래드는 과거 잘 나가던 시절을 뒤로하고 자기보다 성공한 대학 동기들의 소셜미디어를 염탐하며 본인 신세를 한탄한다. 기껏 잠든 아내까지 부추기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물려받을 돈이 얼마나 될까 계산하는 브래드의 모습에 아내 멜라니는 기가 찰뿐이다.


우린 가난하지 않아


브래드 가족은 정말 가난하지 않다. 브래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멜라니는 공무원이다. 중산층들이 모여사는 그럭저럭 괜찮은 동네에 살면서 이웃들과 종종 저녁식사도 함께 한다. 아들 트로이의 입시철이 다가오면서 비싼 학비가 조금은 걱정이긴 하다만, 성적 좋고 음악적으로도 재능이 출중한 트로이는 어딜 가서도 잘 지낼 모범생 아들의 표본이다. 하기야 돈 걱정 안 하며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브래드 본인만 성공한 친구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비교가 오래가면 습관이 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식하게 되고 본인 평판이 어디쯤인지 계속해서 가늠한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지 모르겠는 비교로 인한 불안감은 트로이와 함께 떠난 대학교 캠퍼스 투어까지 이어진다. 트로이의 대학 면접 일정을 함께하는 내내 브래드는 다른 생각을 한다. 본인이 보스턴을 떠나 새크라멘토로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성공한 인생을 살았을지, 이상주의자인 멜라니를 만나 본인의 야망이 상쇄된 것은 아닌지, 트로이가 하버드에 합격하면 본인이 이루지 못한 출세의 미련을 대신해서 채워줄지, 혹은 아들이 너무 크게 성공해서 나중에 아빠는 거들떠도 안 보고 거만해지는 건 아닐지.. 브래드의 비영리회사에 관심을 갖고 조언을 구하는 트로이의 하버드생 친구 아난야에게는 '좋은 일은 돈 많이 벌어서 기부하면 된다'는 식의 속물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남들에게는 실패자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본인은 선한 일을 한다는 사실에 만족한다나 뭐라나..


솔직히..
정말 운이 좋으세요
50살이 되도록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믿고
지금도 충분히 가졌어요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나를 대입하는 순간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만 같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삶에는 여유가 없고, 감사는 메마르며, 무기력은 일상을 집어삼킨다. 영화 내내 브래드가 보인 행동은 공황장애 초기 증세라고 한다. 극도의 불안함과 거덜 난 집중력, 타인을 바라볼 때 질투심을 넘어서 설명 못할 답답함과 고통을 느끼는 것. 누구나 겪는 것은 아닐 테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스스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나의 가치를 찾고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욕망을 두고 불행을 자처한다. 이러한 끝없는 비교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동반한다. 우리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비교를 멈추고 삶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여행 내내 이상한 행동만 보이는 아빠가 안쓰러운 트로이는 여행 마지막 날 나지막이 아빠에게 말을 건다.


오늘 같이 다닐 때 아빠가 창피 줘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 학교 들어오면 다들 기억할 텐데 창피해서 어떻게 다니나 하고
근데.. 걔들은 기억 못 할 거야
다들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아빠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아빠는 내 의견에만 신경 쓰면 돼

네 의견은 어떤데?

사랑해



지금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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