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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Jul 02. 2022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하여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어렵기만 했던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안정적으로 발을 들이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자전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그의 고찰이 아닌 '소설가'와 '직업'이라는 키워드 통해, 글을 쓰고 이야기를 창조하고 가치관과 삶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논한다. 책 표지 속 그에 대한 소개처럼 '작가론적 문단론적 문예론적 인생론적 집대성'이 아닐 수가 없다.


단순히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을 넘어서 '크리에이티브'라는 키워드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 더 크게는 삶을 놓고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잔잔한 조언이 되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설가라는 직업을 이어오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꾸준하고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본인만의 방식을 소개한다.


소설가로서의 사람

소설가라는 종족은 실제로 내 발로 정상까지 올라가 보지 않고서는 후지산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입니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몇 번을 올라가도 아직 잘 모르겠다, 혹은 올라가 볼수록 점점 더 알 수가 없다, 라는 게 소설가의 천성 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소설가에게는 '원래 안착했어야 할 곳에 쓱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게 해 주신다면 '창조력이 감퇴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소설가는 어떤 종류의 물고기와 같습니다. 물속에서 항상 저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서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오리지낼리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 무언가를 마이너스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중략)
주어진 세세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자기표현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런 콘텐츠들이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엔진의 작동정지같은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니 어떻게도 뛰어볼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우선 필요 없는 콘텐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정보계통을 깨끗하게 해 두면 머릿속이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 혹은 전혀 불필요한지를 어떻게 판별해나가면 되는가, 이것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자면,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 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꾸준함과 지속력, 기회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를 20매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은 생기지 않습니다.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 기초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모든 일에는 '물때'라는 게 있고, 그 물때는 한번 상실되면 많은 경우 두 번 찾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우연히 그 호기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지금 돌아보면 행운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행운이란 말하자면 무료입장권 같은 것입니다. (중략) 그 입장권이 있으면 당신은 행사장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그냥 그것뿐입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건네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취하고 혹은 버릴지, 거기서 생기게 될 몇 가지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재능이나 자질이나 기량의 문제고, 인간으로서의 기량의 문제고, 세계관의 문제고, 때로는 극히 심플하게 신체력의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건 단순히 행운이라는 말만으로는 미처 다 처리되지 않는 사안입니다.


창작과 자기치유

대체적으로 나 자신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만 의식하면서 썼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몇 가지 이미지를, 나에게 딱 감이 오는, 납득이 가는 단어를 사용하고 그 말을 적절히 조합해 문장의 형태로 만들어간다... 머릿속에 있는 건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아울러 거기에는 아마 '자기치유'적인 의미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지금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형식에 끼워 맞추는 것을 통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행하는 다양한 모순이나 뒤틀림, 일그러짐 등을 해소해나간다 - 혹은 승화해나간다 - 는 것입니다.


나는 경영하던 가게를 매각하고 이른바 전업작가가 됐습니다. 당시는 아직 문필활동보다 가게 쪽 수입이 더 많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그것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생활 자체를 소설 쓰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시간을 모조리 소설 집필에 쏟아붓고 싶었습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퇴로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불평을 늘어놓는 쪽에서야 간단하겠지만(생각 가는 대로 입에 올릴 뿐 구체적인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말을 듣는 쪽에서는 일일이 진지하게 상대했다가는 우선 몸이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나쁜 말을 들을 거라면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라고 하게 됩니다.


Pushing the boundary

호경기로 들썽거리던 일본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노르웨이의 숲>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내입으로 말하기는 좀 거북하지만)라고 원고 청탁이 줄줄이 들어와서 마음만 먹는다면 높은 수입을 얻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환경을 벗어나 일개(거의) 무명작가로서, 신참으로서, 일본 이외의 시장에서 내가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개인적인 테마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그런 목표를 가치로 내걸었던 것이 나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글의 소제목은 책의 목차가 아닌 나열한 문장들을 문맥에 맞게 분류하기 위해 내가 임의로 개작한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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