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현 Jul 15. 2022

우유부단

"인생은 용기의 양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아나이스 닌-


나는 팔랑귀다.


결심을 굳혔다가도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바람을 넣으면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린다. 무엇하나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선택 앞에서 방황하다가 A도 아니고 B도 아닌 이상한 선택을 하고 후회한다.

뭐, 한 번에 확실한 선택을 한다고 해서 후회가 없을 거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주관이 뚜렷하고 가고자 하는 길이 선명하다면 꼬불길이라도 곧장 갈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신뢰해서 타인의 방향에 편승한대도 잘 받아먹고 데려다주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문제 될 것도 없다. 내 주관도 있고 남의 말도 들어봐야겠는 병적인 성격 때문에 이상한 혼합이 되어버린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거나 밀키트의 매뉴얼대로 조리를 하거나, 그런데 내가 만든 음식은 이도 저도 아닌 근본 없는 괴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웃기는 짬뽕이다. 기가 막힌다.


지금도 그렇다. 워킹 홀리데이 간다고 해놓고서 비자 발급받는 거 찾아본답시고 남들 브이로그만 한 시간을 넘게 봤다. 남들의 경험에 의존해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한다. 남들 힘든 거, 어려운 거 내 일인 양 쫄아가지고 갈팡질팡 하는 중이다. 누가 보면 이미 다녀온 줄 알겠다. 갈 거면 가고 안 갈 거면 그냥 안 가버리면 되지 뭐 그리 생각이 많은지 모르겠다. 화면에 비치는 것들이 전부가 아닌 걸 알면서도, 같잖은 핑곗거리만 늘어놓으면서 또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다.


남의 인생도 아니고 내 인생인데 좀 베리면 어떻고 조지면 어떤가? 해결하는 것도 나고 체화하는 것도 나다. 그냥 맘 편히 먹고 내 인생의 결정권을 내 손에 스스로 쥐어줬으면 좋겠다. 아니, 이미 내 손에 있는데도 지금껏 외면해왔다.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라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반응은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바롸왔는지도 모르겠다. 합리화할 적당한 핑곗거리가 되니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인생은 모름지기 스스로의 경계선을 허무는 것이다. 바운더리를 스스로 넓히는 것이랄까. 같은 자리만 빙빙 돌다며 도망 다니다가 제 분에 스스로 붙잡힐 바에는 두려움에 마주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지만 신중해야 한다. 계획적으로, 다른 사람의 바람이 들지 못하게 나의 계획, 나의 주관으로 꽉 꽉 채워 넣어야겠다.


워킹 홀리데이 가야겠다. 원하는 삶을 살자.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의아함은 그들의 몫이라고 한다. 꼬불길이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된다.

"당신의 삶을 너무 타인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 향하는 곳을 알면 타인의 중요성은 뚜렷하게 약해진다.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이 모호할수록 타인의 목소리와 주변의 혼란, 소셜 미디어의 통계와 정보 등이 점점 커지면서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스스로를 옥죄는 두려움에 이렇게 나무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름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