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현 Jun 23. 2022

게으름에 관하여

원숭이 같은 삶은 이걸로 충분하다

나는 애초에 게으름이 기저에 깔려서 태어난 사람이다.

능동보단 수동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고 벼랑 끝까지 미루다가 감당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사람이다.


뭐, 지금이 되어서야 성인이기도 하고 슬슬 내 앞가림을 스스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체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가려고 여러 가지 노력들을 기울이는 중이지만, 결국 이 모든 일련의 노력조차도 게으름의 구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제는 더 이상 게으르고 싶지 않다.


나의 게으른 모습이 싫은 이유는 간단하다. 할 일 없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이다. 여기서 또 비교를 해버리면 나 자신이 초라해지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그리고 능동적으로 본인의 삶을 살아가며 성취감을 느낀다. 나도 성취감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뿐이다. 그저 남들 하는데 좋아 보이는 거 허겁지겁 따라다니며 타인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끌려다니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일찍 일어나 내 먹이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챙기고 싶을 뿐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선택권은 줄어든다.


혹자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라며 비꼬듯 여유를 부추긴다. 맞는 말인 듯 그렇지도 않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또 일찍 잔다. 또 다시 시작될 내일을 위해 잠자는 것조차도 부지런히 챙긴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 내 얘기다.)은 잠자는 시간조차 미룬다. 당장의 행복, 도파민의 폭탄 속에서 새벽을 정처 없이 헤맨다. 그러고 쓰러지듯 잠에 들고 지쳐 일어난다. 그러기에 인생은 너무 소중하고 하루는 너무 짧다.


여유로운 치열함을 원한다. 여유도 결국 쟁취하는 것이다. 마치 강물을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처럼 말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백옥 결의 아름답고 여유로운 자태뿐이지만, 그 품위를 위해 열심히 물살을 헤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오죽하면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도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이런 끔찍한 불평불만과 원숭이 같은 삶은 이걸로 충분하다. 너는 오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그러는 대신 내일을 택한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

마르쿠스는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자신의 게으름과 이기심에 내리꽂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기록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