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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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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Aug 26. 2022

푸념

알바를 구했다.

의류 매장의 파트타이머가 되었다. 원하던 일이다.

주 4일 하루의 3분의 1 정도를 매장에서 보낸다.

바쁘지만 열심히 배우며 적응해나가는 중이다.


일상을 잃었다.

어쩌면 일상을 포기했다.

직장 같은 알바는 뚝딱거리며 어떻게든 해보는 중이다. 생각과 달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을 뒤로하고 늦은 퇴근을 핑계로 새벽을 뜬눈으로 맞이한다.




엄두가 안 났다. 마지막 알람 소리에 못 이겨 일어나고 시급 한 시간짜리 택시를 탄다. 남의 돈을 받는다는 것이 꽤나 치열하고 어려운 것임을 깨닫는 나날이다.


생산성, 루틴, 차분한 호흡이랍시고 주도적인 삶을 살겠노라 내던진 출사표는 패잔병이 되어서 돌아왔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일상을 가꾼다는 다짐은 넘치는 시간에 못 이겨 부려본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나며 가족들과 시간을 갖는 것, 우리가 말하는 일상과 여가는 사치가 맞다. 그렇다고 이 모든 걸 지키려 하는 사람에게 괜한 욕심부리는 푼수라 비난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일상과 여가를 지켜낸다는 것은 의지의 문제다. 필사적으로 지켜내는 것이다.

시간이 나를 움직여서는 안 되며 금전이 나를 이끄어서는 안 된다. 보상심리를 끄집어내야 한다. 퇴근 버스 안 울적한 감상은 허상이다. 감수성을 본인의 연약함에 장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게으를수록 스스로에게 관대한 법이다.


일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지켜내는 것이다. 치열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규칙과 패턴이 없이는 자유로울 수 없다. 방종이다. 게으른 자유는 없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가꿔야 할 자유가 있다.


일은 수단일 뿐이다. 목적은 '나'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가치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시간 이외에 갖는, 필사적으로 지켜나가는 가치, 여가, 규칙, 일상이 나를 결정하고 더 높고 올바른 곳으로 견인한다.


내일은 진짜 일찍 일어나야지

택시 그만 타고 꼭 버스 타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기도하고, 일찍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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