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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Dec 21. 2022

크리에이터가 돼야겠다

 내 취향은 확고한 편이 아니라서 늘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리고 그 취향이 향하는 곳은 늘 재능의 영역과 결을 같이 했다.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더 잘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어린 시절 나는 남자애 치고는 밖에 나가 공차며 뛰어놀기보다는 방 안에서 이것저것 사부작거리길 더 좋아했으며 항상 시청각적인 무언가에 매료되었다.


 기억의 농도가 비교적 짙어졌을 즈음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된 지금까지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자면, 나는 늘 무언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착이 컸던 것 같다. 집착이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내가 만든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는 날이면 날마다 집에서 종이접기를 했다. 학이나 개구리 같은 시시한 것들이 아닌 꽤나 어려운 것들이었다. 매뉴얼은 읽을 수 없는 일본어와 알아보기도 힘든 그림들로 가득했고 과정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길었다. 아마 용이나 공룡, 로봇 같은 것들을 접었는데,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온 날이면 늘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신기해하며 또 보여달라는 친구들의 반응을 즐겼다. 맨날 책가방에 종이접기 책이랑 신기한 모양의 장난감처럼 생긴 종이쪼가리들을 넣어 다니다 보니 나중에는 나름의 유명새가 생겨서 같은 학년 누구한테나 내 이름을 말하면 '아 그 종이 접는 애?' 정도로 기억되었던 것 같다. 그 수식어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기타를 쳤다. 어디를 가나 기타를 들고 다녔다. 나름의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친구들이 쳐달라는 노래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맬로디를 뽑아냈으니 말이다. 존 메이어나 에드시런 같은 유명한 뮤지션의 꿈을 꾸었던 적도 잠깐 있었다. 기타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첫 연애도 고등학생 때 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내가 연주하는 걸 들어주는 모습이 좋았다. 살아있는 느낌이었달까.


 그때는 몰랐다. 그냥 종이를 접는 것이, 기타를 치는 것이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내가 잘하는 일을 순수하게 잘하고 싶은 욕구보다 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방법을 몰랐을 뿐, 항상 순수하게 좋아했던 일은 없었다. 방구석에서 괜찮은 선율이나 괜찮은 문장, 생각이 나오면 누군가에게 들려주어야 했다. '자기표현'에 대한 알 수 없는 집착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를 테크니션이라고 생각했다. 나만의 나무를 애지중지 키워나가고 싶었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잘하고 그 실력을 키워나가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나를 돌아보면 나무를 가꾸기보다는 결국 숲을 가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을 매개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를 늘려나감으로 내 세계관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큰 이유다. 어쩌면 내 취향은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궤를 돌면서 비슷한 결의 취향들을 늘려나가는 것이지 않나 싶다. 나를 표현하는 장치들을 하나 둘 늘려나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를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굳이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일 등을 수식하는 관용구이지 않을까.


 문득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커져가는 요즘이다.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무작정 시작하면서 나를 이루는 궤도 안에서 새로운 취향과 나만의 세계를 키워나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부정을 무마한다. 당장 시작해야 할 이유만을 남긴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나는 방법을 몰라서, 남의 눈치가 무서워 등의 꽤나 그럴듯한 핑계로 자기표현을 미뤄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오랜 고민과 게으름 속에 시작하길 꺼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맥 속에서 자연스레 시작할 용기를 얻어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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