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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Dec 29. 2022

송년회

 올해도 정말 끝이다.


 끝나가는 한해를 바라만 보자니 조금은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이 웃도는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난 1년을 기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던지, 내년 계획을 세운다던지, 1년간 수없이 눌렀던 카메라 셔터의 흔적을 따라 간직한 추억을 회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소셜미디어 플랫폼, 대형 웹사이트, 온라인 스토어 등지에서도 고객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어떤 모양으로 소비했는지 일종의 고객맞춤 연말결산을 실시한다. 물론 이러한 간단한 보여주기식 아카이빙은 마케팅의 일환이겠지만 한 해 동안 내가 무엇을 보고, 먹고, 구매했는지 이것저것 확인해보면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가벼운 추억거리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내 시간과 자본을 어떻게 소비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후회와 다짐은 덤이다.


 이렇듯 우리는 다가오는 무언가보다는 지나오거나 떠나보내는 무언가에 더 크게 반응하는 듯하다. 좋건 싫건 말이다. 되돌아오길 바라는 마음과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체념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에서 우리는 강한 아련함과 아쉬움, 약간 과장하면 찬란함까지도 경험한다.

  어째서 우리는 과거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일까? 다가오는 미래, 앞으로 내가 그려나갈 길에 대한 기대와 다짐으로 가득한 마음이 아닌 지나간 시간, 장소, 마음, 사람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에 머물려 하는 것일까?

 아마 지나온 기억들은 단순히 기억 그 자체로 남지 않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기억은 미화된다'라는 말이 있다. 매일매일을 버텨낸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듯 하지만, 잠시 숨 돌릴 겸 걸어온 길을 돌아봤을 때 희미하게 보이는 그날의 나와 내가 지나친 세상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잊고 살아왔던 감정과 기억이 생각지 못한 순간 강하게 뇌리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기억은 그 자체로 머물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은 자신이 겪은 경험이나 주변인들과 공유한 순간들의 집합체다. 그 순간들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각자의 기억은 히트 앨범처럼 우리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영화 서약의 대사다.

 영화가 말하듯 우리의 과거와 그에 대한 기억은 결국 향유로서 존재하는 듯하다. 개인의 기억이 아닌 '우리'라는 집단의 기억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의 기억 하나하나가 서로의 것과 연결될 때 전혀 다른 감정, 분위기, 냄새가 만들어진다. 이로 인해 기억은 미화되고 지나온 과거는 삶을 강타하는 순간들로 되돌아오지 않나 싶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분명 좋았던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한해를 떠나보내는 시점에서 걸어온 1년의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면 기억은 어느새 휘발된 지 오래고 그날의 감정만 그득한 향으로 마음을 채우고 있다. 우리가 과거에 머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기억은 희미해져도 그 자리에 남아있는 향기는 오래도록 은은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거의 머무름 속에서 내년을 기약하고 계획하고자 한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진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빠르게 이리저리 옮기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지나온 발자국이 아닌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자고 다짐한다.

 지나온 발걸음은 때때로 비바람과 눈보라에 지워져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내가 지나온 풍경은 보다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 먼 길을 떠나왔지만 태양과 달은 같은 곳을 비추며 산과 바다는 우직하게 삶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감정에 머물러 그득해진 향수에 젖어있는 지금 한걸음 내딛을 내일을 바라보건대, 다가오는 한 해는 혼자 기억하는 매일의 기록보다는 '우리'가 향유한 농도 짙은 추억들로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이게 올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글이 되고 찐 최종 연말결산 겸 새해를 여는 나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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