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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Dec 01. 2022

요즘 하루

요즘 쉬는 날엔 도서관에 간다.

아니면 집 근처 카페에 가거나.

특별히 공부를 해야 하거나 중요한 작업이 있어서 가는 건 아니다. 나는 갓 전역한 배짱이 휴학생이다. 그냥 책 읽으러 간다. 이게 요즘 쉬는 날 루틴이자 소소한 행복이다. 어디 근사한 데 놀러 가지 않아도 집 근처 사람 북적이는 곳으로 향해 그 분위기 속에 녹아드는, 사소한 행복이다. 준비물은 랩톱과 책 한 권, 노트와 필통이다.


그런데,


도서관 가는 길에는 항상 맥도날드를 지나게 되는데 햄버거의 유혹을 떨쳐내기란 늘 여간 일이 아니다. 너무 자주 먹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오늘이 마지막임을 수없이 다짐한다. 최근 들어 생활의 규모가 없어진 탓에 맥모닝은 못 먹은 지 꽤 됐지만, 오히려 좋다. 하루 일과의 시작을 런치 가격의 쿼터파운더 치즈버거로 시작할 수 있음은 적당히 게으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식사를 마치면 바로 옆엔 스타벅스가 있는데 식곤증에 대비해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야 한다. 무조건 아이스로 먹지만, 요즘엔 쌀쌀해진 날씨에 라떼도 좋은 선택지다. 때때로 도서관에 가기 귀찮은 날이면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는다. 몇 시간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은은하게 배어있는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진다. 로스팅 향이 진한 것마저 마케팅의 일환이라면 난 이미 그들의 충실한 팬이자 고객이다.

도서관에 가는 글인 줄 알았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맥도날드와 카페로 채워진 글을 보자니 사실 도서관을 가려고 집에 나오지만, 햄버거를 먹고 옆 카페에 자리 잡기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를 더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글처럼 말이다.


아무튼,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노트북을 켠다. 책을 읽는다던가, 읽었던 책의 문장을 정리한다던가, 노트에 몇몇의 문장들을 흘린다던가, 일종의 창의 노동이라 말하고 싶은 일들은 밖에서 마치고 왔으니 집에서는 영화를 보거나 영어공부의 일환으로 미국 시트콤을 본다. 요즘엔 '더 오피스'를 즐겨본다. 영화를 보는 날이면 뭘 볼까 고르는데 더 시간을 쏟는 듯 하지만, 이마저도 즐기는 편이다. 두 시간 길이의 영화를 다 보기까지 세 시간이 걸리는 까닭이다. 보고 싶은 리스트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리 한결같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영화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운 편이기도 하다. 그날의 기분에 어울리는 영화를 봐야 한다. 감상을 마치면 인상적인 장면들을 수집한다. 주로 문장들이다. 간단히 정리하고 짧게 느낀 점도 남긴다. 대부분의 경우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든다. 늘 자기 전에는 작은 화면 속 알고리즘과 한바탕 씨름을 하곤 하는데 이 시간에 책을 한 줄 더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만, 또 이런대로 낭만이고 행복이지 않을까 느끼는 요즘이다.


결국,


중요한 건 도서관이 아니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나를 채우는 중요한 속재료이지만, 나는 그저 내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무엇을'보다는 '어디서' 혹은 '어떻게' 해나가는 것에 중점을 둔다. 내가 빚은 오늘 하루의 모양이 마음에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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