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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Jan 18. 2023

글쓰기

1월

며칠에 걸쳐서 글쓰기와 창의, 초조함, 약간의 불안 등지의 마음속을 종횡하는 생각들 사이를 오갔다. 어쨌거나 나는 내 글과 나의 생각,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내가 공들여 빚어놓은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자기표현'이다.


그런데 '자기'가 없이 그저 '표현'에만 치중하려다 보니 정작 내 얘기, 내 생각은 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생각할 수 있는 표현과 문장을 길게 늘어뜨리거나 재배치하기만 하면서 값싼 공감을 형성하는 양산형 글쓰기가 몇 주간 지속되었다. 목적 없는 수단이고 주가 없는 객이 된 꼴이었다.


스스로 검열을 많이 했다. '이 표현은 너무 극단적이지 않을까', '이건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할 것 같은데' 등등의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내 생각의 회로를 가로막았다.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개인적으로 터부시 하는 것들에 관하여 내 생각을 말하고 싶기도 했다. 나의 분노가 가리키는 곳에 내 펜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보여주기에 너무 치중되어 버린 나머지 내 속 깊숙이 숨어있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들춰보지 못했다.


글을 꾸준히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왕이면 내가 나의 지나온 길을 돌아봤을 때 새로운 영감을 느꼈으면 했다. 매일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부터 내 손의 끄적임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이렇게 얼마간의 고민 끝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소 클리셰이긴 내 글은 결국 고생 끝에 낙이 와야 하고, 불안 끝에 행복이 있어야 하며, 낯섦 이후에는 배움이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뻔한 구조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의 끝에 마침표가 찍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생각을 한 순간 무엇을 쓰며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선명해진 것 같음을 느꼈다.


그렇다. 결국 나는 매일의 기록, 매일의 생각, 하루의 끝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그 끝자락에 배움과 교훈, 일종의 뿌듯함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감정에 사무쳐 그 사적인 생활공간 속 몇 날 며칠을 표류하기도 하고, 한 순간의 실수로 보드게임처럼 뒤로 다섯 칸 정도 튕겨나가는 듯한 날들도 있다. 물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순간이고 인생을 훨씬 다채롭게 만들어주지만,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은 그 끝에 무언가 좋은 결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만든 클리셰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무슨 생각을 하던, 어떤 글을 쓰던, 어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던, 어떤 낯섦에 나를 던져놓든 간에 그 끝에서 해피엔딩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매일의 감정에 표류하기보다, 감정의 파도, 사건의 크기 속에서 흐름을 타며 서핑을 하는 보더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내 글 또한 표류기가 아닌 극복기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싶다.


며칠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민의 시간이었다.

이 글 말고도 글쓰기에 관하여 지금 내가 가진 고민에 관하여 수 페이지 더 토해내기도 했다.

사실 나는 내가 무슨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해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정답까지의 과정을 몰랐을 뿐이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늘어지고 엉킨 마음속 실타래를 다시 풀어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얼마간 죽 엉킨 끈을 노트 위에 잔뜩 늘어놨으니, 정비를 마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겠다.


그래서 결론은, 결국 나를 위해 나를 쓰는 것이다. 다만 늘 배우고 경청하며 하나하나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면 되는 것이다. 표류하려 하지 말고 끝까지 탐색하고 더 큰 보폭으로 진취하자. 과정이 가장 중요한 글쓰기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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