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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Jan 25. 2023

퇴사

퇴사를 했다. 파트타이머 신분에서 퇴사라는 표현이 다소 거창하긴 하지만, 아무튼 퇴사를 했다.


8월 초였나, 군대 전역을 하고 곧바로 유니클로에 파트타이머로 입사를 했다. 스케줄은 매주 매장 상황에 따라 정해지며 하루 7시간 근무에 주 4일 출근이었다.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의 감정은 정말이지 하늘을 나는 듯했다. 또 하나의 성취를 이뤄냈다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첫 출근길에 나섰다.


일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고객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매장 분위기는 그저 평화롭기만 했는데, 직접 일을 하니 매장은 전장 그 자체였다. 남의 돈을 버는 입장에서 몸이 편한 것을 기대한 것이 웃기긴 하지만, 쉴 시간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아마 첫날엔 꽤나 많이 혼났던 것 같다. 물론 혼날만한 실수를 많이 했다.

녹초가 된 몸과 마음으로 퇴근 등록을 하고 매장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일에 대한 기대 혹은 즐거움 등등의 감정은 지는 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저편으로 넘어갔다.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첫날 퇴근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불쑥불쑥 퇴어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진 일들을 해나갔던 것 같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을 소화해 가며 다양한 작업을 배웠다.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고 그 덕에 앞뒤로 늘어나는 근무시간도 덤으로 받았다. 때때로 일하는 시간 외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 같아 불편함을 느끼긴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즐거운 시간도 있었고,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도 있었다. 퇴근길에 지나치는 교회 예배당에 들어앉아 눈물 찔끔 흘린 적도 있다(진짜 아주 찔끔). 그런다 한들 솔직히 그 당시의 기억이나 감정들이 그리 선명하진 않다. 그냥 한 덩어리의 형태 정도로만 보인다.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군시절의 기억이 아련한 추억 속에 남는 것이랑 비슷하다고,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이미 환기된 지 오래고 그 자체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어쩌면 대체로 좋았던 기억들만 남기기 위해 퇴사를 한지 몇 주 지난 시점이 되어서야 펜을 든 것 같기도 하다. 고기를 양념에 재우면 더 맛있어지듯이 기억이 추억으로 스며들기 위한 일련의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유니클로에서 일하는 시간을 즐겼고, 내가 해결해 가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성취감을 느꼈으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다. 결국 내 기억은 환기됐다. 꿉꿉하고 기분 나쁜 공기는 한 겨울의 찬바람과 사라지고 그득히 남아있는 본래의 향만 남아있었다.


아무튼,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음에 감사하다.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 일하는 가치를 배웠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버티면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다. 어떠한 형태로든 말이다.


포기는 여러 번 다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다. 포기하면 무조건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포기하면 X 된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무슨 이유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직관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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