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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Feb 01. 2023

직업의 3요소

언젠가 직업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첫째는 생계유지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자아실현이 되어야 한다.

셋째는 사회공헌이 되어야 한다.


생계유지도 알겠고, 자아실현도 알겠다. 그러면 사회공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뭐,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될 듯하다. 의사를 예로 들면, 일단 의사가 되면 생계유지는 거의 보편적으로 얻어갈 수 있다. 사회가 의사에게 산정하는 재화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을 살린다’, ‘아픈 이들을 돕는다’라는 직업의식은 의사로서,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닌, 의사라는 직업 자체에서부터 품어져 있는 정체성이다 그러면 이를 위해 의사의 직업을 택하는 사람은 자아실현을 이뤄낸 거고, 사회공헌은 덤이다.


그렇지만, 세상엔 다양한 직업이 있고 다양한 방식과 방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통념이 존재하고 기준이 마련된 사회라고 할지라도 개개인의 기준은 비슷한 듯 다르게 확고해서 직업을 정의하는 기준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의사나 성직자, 뭐 이런 윤리의식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직업을 제외한 다른 직업군, 업계에서 우리는 직업의 3요소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세 요소가 균형 잡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할 방향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직업의 3요소, 어쩌면 나만의 강박일 수도 있는 기준을 맞춰 나로서 작동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직업 이외에도 다른 방향으로 자아실현 혹은 사회공헌이 가능한 것도 맞다. 직업은 단순 생계수단으로, 본인의 삶의 다른 부분에서 취미 혹은 사회적 관계를 쌓아가면서 세상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도,

나는 왜인지, 적어도 내 삶은, 내가 선택한 직업은 생계유지, 자아실현, 사회공헌의 3요소를 다 충족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단순히 내가 앞으로 쌓아갈 삶의 커리어를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은 단 한 톨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인류는 죄로 인해 축복이었던 노동의 가치를 ‘힘써 땀 흘려야 하는’ 저주로 돌려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비전을 부여받았다. 그러면 이 비전이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천의, 적어도 종교적 신념이 삶에 어느 정도 깊숙이 자리 잡혀있는 나라는 사람의 직업의식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직업의 3요소는 필수적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동시에 가진다.

직업, 노동, 삶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져가는 시대다. 이전에는 노동과 삶의 확실한 분리가 이루어졌다면, 요즘은 그것도 아니다. 여가, 노동,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 등이, 다른 말로 한 사람의 정체성, 라이프스타일, 취향, 고집 그리고 이 총합이 경제활동으로 이뤄지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SNS,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로 부를 창출하기도 하고 브랜드, 기업은 생산력이 아닌 이야기로, 즉 스토리텔링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다. 이런 ‘모호’의 시대 속에서 직업의 3요소는 직업 안에서 이루어짐이 아닌 삶의 전반의 부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느 시대보다 내 영향력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취향과 생활, 관계는 갈수록 마이크로해짐에도 불구하고 연대는 느슨하게 매크로해진다. 서칭 몇 번만 하면 과장 보태서 전 세계 사람들이랑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다. 직업의 3요소라 말하는 생계유지, 자아실현, 사회공헌 결국 직업을 구성하는 3 요소가 아니게 된 것이다. 우리 세상은 직업의 종말을 맞고 있다. 이렇게 보면 생계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단연 삶의 전반에서 이뤄내야 할 것들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는 복잡해진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직업은 생산을 했으며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는가? 사람들은 물건이 아닌 이를 포장하는 이야기에 그들의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 화려한 이야기에 상품은 덤인 것이다. 결국 직업의 3요소도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 뒤처진 이론에 불과하단 말일까?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고, 휴지는 누가 만들고, 사람은 누가 살릴까? 전문화는 벌레들이나 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 들어 모든 게 확실하게,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높게 샀던 시절이 주는 순도 높은 성취와 행복이 어땠을지 경험하지 못한 아련함이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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