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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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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Mar 02. 2023

내 삶이 내 삶같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고 타인의 삶을 산다거나 매 순간이 불행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몸뚱이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를 표류한달까.


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마음속을 들여다 보아도 한 바탕 빗줄기에 전부 씻겨 내려갔는지 도통 보이는 것이 없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목적과 의미, 이유와 당의 등등 마음을 드나드는 반갑거나 그렇지 않은 손님이 없는 빈 방으로 살아간달까.


뭐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낯섦의 광선 같은 것을 정통으로 내리쬐면서 머릿속 얼룩져있던 여러 가지 생각들, 껌딱지 같던 고민거리 등이 한바탕 씻겨 내려간 듯하다. 내 삶이 내 삶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 말이 삶이 무기력하고 우울하거나 불행하다는 뜻이 아닌, 내 삶을 타인의 목소리에 끼워 맞춰 끌려가듯 살아간다는 것이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듯한 몇 날 며칠을 보내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것이 늘 어려움 없이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는 편이라 지금의 아무것도 아닌 감정에 조급해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이 아무것도 아닌 상태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씻겨질 때까지 스스로에 거리를 두고 저만치 멀리서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늘 쉽게 적응하는 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빈 방도, 씻겨 내려간 얼룩도,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도 낯선 것이 아닌 익숙함에 마음속을 드나드는 다양한 객들을 마주하고 알록달록 혹은 얼룩덜룩하게 칠해지고 바람 잘 날 없는 들판에 핀 갈대같이 흔들릴 터인데, 최대한 많이 비워내고 낯섦에서 비로소 익숙함으로의 북적임에 다다르는 과정 속에서 꽤나 괜찮은 그림이 그려졌으면, 내실이 단단한 분들이 상주해 주셨으면, 되도록이면 한 결의 바람 같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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