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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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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May 21. 2023

그냥

사실 모든 일에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뭔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기 위한 자극이나 마음가짐 따위 말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건대, 지금껏 나의 가장 큰 동기부여이자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자극은 '그냥'이었다.


'그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냥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그냥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냥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냥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움직였고, 나는 그 움직임에 응답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나에게 있어서 초심자의 행운은 그냥 하는 것이었다.

'재미있어 보이네?, 멋있어 보이잖아?'

그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벌였다. 그림을 그리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무작정 달려보기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음의 게으름인지, 나와는 영 맞지 않는 일들이었는지 하나 둘 떨어져 나가면 더 이상은 '그냥'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반복의 결과물이 빚어진다. 그렇게 무언가를, 나를, 나를 설명하는 무언가를, 내러티브를 세상에 낳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글을 쓰고, 기타를 치고, 영상을 만들고,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지도, 입 밖으로 내뱉고자 한지도 어언의 시간이 흘렀다.


그냥이라는 추파를 던져가며 어쩌면 나는 매일의 기회를 넘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것은 가혹한 시험의 각오를 다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용담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목을 숲 속 괴물에 내어준 '그린나이트'의 젊은 용사처럼, 그냥이라는 의미 저변에는 매일을 나다움으로 가득 채워 살아가길 바라는,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가는 처절한 다짐과 그 다짐의 반복이 있는 것이다.


그냥 해보자. 그냥 해보는 거다. 좋아하는 것을 굳이 애써서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는 주저 말고 발을 내딛자. 머리를 쥐어짜고 매일같이 반복하며 매일같이 깨어지자. 그렇게 그냥 시작한 일들이 꽤나 그럴듯하게 세상 밖으로 품어낸 나만의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곳저곳 씨를 뿌리면서 앞으로 자라날 무언가를 기대하자. 그냥 시작한 일이 무수한 반복을 거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이,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바라봐주는 내가 되는 것이다. 반복이라는 가혹한 시험 끝에 온전한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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