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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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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Jul 23. 2023

야간기차

매일같이 글을 쓰겠노라는 다짐은 매일같이 겹겹이 쌓이는 허물을 벗어내겠다는 의지와 비슷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앞에 나를 앉혀놓고 오고 감이 없는 대화를 그려낸다고 해야 할까, 대화보다는 어쩌면 일방적인 심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며칠은 피곤함과 몽롱함, 자기 검열과 타협, 약간의 술 취함과 곧 사라질 기분 좋음, 확신과 불신 등지의 애매모호한 감정을 오가며 이도저도 아닌 마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매일같이 나를 마주 보는 대화마저 정적이 이어지자, 나는 아무래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매일을 등져버린 것인지, 그마저도 스스로를 향한 동정이었던 것인지 알 수 없음의 무풍지대 혹은 망망대해 같은 공허의 연속이었다.


삶을 적어내겠노라, 삶을 파해치겠노라 호기롭게 외치던 나의 다짐은 끝끝내 헛헛함만 남은 의지박약이었는지, 쓰는 대로 살겠노라 외치던 나의 문장들은 삶의 지난함에 기가 죽어 적어낼 용기마저 빼앗겨버렸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무겁진 않다만 마냥 가볍지도 않은, 궤를 도는 감정들을 짊어지고 야간 기차에 올랐다. 왜 굳이 기차였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수 있는 대답은 없다. 애당초 효율이 없이 느린 사람인지라, 의미 없는 기차 안에서의 12시간이 속절없이 흐를지라도 결국엔 필요한 시간이겠거니 받아들이는 편이다.


지난 며칠은 헛헛함과 향긋함, 꿉꿉하고 어스름한 마음에 잠들기가 어려웠다. 다 품어내고 살아가겠다 마음먹을 뿐이다.


7월 6일 아침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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