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현 Jul 31. 2023

머리를 밀었다

머리를 밀었다. 이제는 민머리의 내 모습이 익숙해졌는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나로서는 큰 동요가 없다. 애초에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라 후회를 할 이유는 없는 듯하다. 그저 있다가 없는 정도의 차이뿐이다.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다. 썩 달갑지 않은 기분에 굳이 마셔야 할까 하는 마음이다. 아무래도 술은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담배가 피고 싶다. 어렸을 적 호기심에 피웠던 맛을 늦바람이 들어서 알아버렸다. 한숨을 연거푸 내쉬는 날이면 날숨에 담배연기와 함께 마음속 자욱한 고민거리들도 빠져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땅이 꺼지도록 숨을 내쉰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기에 구태여 찾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예배시간에는 늘 다른 생각에 빠진다. 그렇게 마음속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 보면 잠기는 것은 눈꺼풀이다. 봉사도 하고 사람들도 좋다. 그런데 교회만 오면 피곤하다. 집에 가고 싶다. 결국 내 마음이 문제겠지. 이렇게 된 이상 언제고 내 신앙이 있었는지 희미하게 보이는 다짐 혹은 고백이다.


이제는 책을 읽으려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비거나 할 일이 없을 때면 습관처럼 책을 찾는다. 그 덕에 이렇게 글도 쓸 수 있는 걸까,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싶은 마음이다.


일은 그럭저럭 괜찮다. 요즘엔 잡생각이 너무 많아 일하는 시간이 오히려 반갑다. 숨어 들어가듯 일터에 나가면 바쁘게 할 일을 찾아들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어딘가에 있겠지 싶은 마음이다.


같이 사는 사람들은 좋은 편이다. 집주인이 집세를 현금으로 받고 동거인이 화장실을 더럽게 쓰는 것을 빼면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하는 요즘이다. 생각이 많아져서 오히려 생각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무엇인가 망가져버린 마음속을 들여다보느라 세상 밖을 살아내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게 일터로, 영화 속으로, 책 속으로 도망치기 급급하다.


잠들기 싫고 일어나기 싫다. 잠들지 못하게 하는 생각들과 일어나기 싫게 만드는 달콤한 꿈에 서서히 몸이 굳어간다. 너무 오래 누워있던 탓인지 좀체 서있으면 허리가 뻐근하다. 잠자고 일하고를 반복하는 요즘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야간기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