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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Sep 10. 2023

콤플랙스

민머리를 유지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편해서 아마 평생 이렇게 살지 않을까 싶다.


스무 살이 되면서 머리카락이 조금씩 얇아지고, 이마에 M자 라인이 생기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확신은 부정에서, 결국엔 체념으로 이어졌다. 어린 나이에 머리를 잃을 수 없다며 탈모약을 먹어보기도 했으나, 결국엔 다 잃겠거니 시한부적인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참 슬펐다. 그때부터였나, 내 넓은 이마는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콤플랙스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콤플랙스가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나는 언제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찾아 나섰던 것 같다. 언젠가는 굵은 종아리가 싫었고, 지저분한 수염이 싫었고, 왼쪽으로 틀어진 턱이 싫었고, 점점 벗겨지는 이마가 싫었다.


스스로에 대한 잘못된 관심은 곧 집착으로 이어지고 본인을 향한 불만족은 줄곧 파고드는 내성발톱처럼 마음속을 쿡쿡 찔렀다. 아마 지난 시절의 나는 겉으로는 싹싹한 듯 그럴듯한 모양으로 무던했지만, 자존감은 늘 바닥을 기었고, 그 때문이었는지 늘 사람과 관계에 집착했다. 생각하건대 내 삶에 나는 없었고 타인의 시선만 있었다. 난 항상 주변을 의식했다. 지금에서야 머리도 크고 내 또렷한 주관도 생기면서 나름 건강한 매일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타인에게 나를 맡겨버리던 기억 속의 나는 늘 불안했고 불완전했다.


그토록 스스로를 힘들여 갉아먹던 콤플랙스는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과정이 어려운 것이었나, 마음먹기에 따라 행동하면 곧바로 사라질 허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지난한 시간 동안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못했다.


사랑은 이해와 의미를 같이하는 단어라 말하고 싶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적어도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가족은 삶을 공유하고 감정적, 육체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이해관계 속에서 사랑한다. 친구는 경험을 공유하고 즐거움을 향유한다는 이해관계 속에서 사랑한다. 연인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나와 누군가와의 물리적, 심리적 환경과 서로에 관한 정서적인 이해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공감의 영역이다.


아마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늘 불완전한 자아를 갖고 나의 삶을 타인의 목소리에 너무 쉽게 의존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알지 못했기에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었기에 겉모습에 집착하고 만족하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나에게 스스로가 말을 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선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실 나는 한결같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도 언제고 다르지 않다. 나는 언제나 같은 나인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다. 나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를 불완전한 사람이라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된다. 나를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개인은 세상의 그 모든 것보다도 스스로에게 더 큰 의미가 된다. 너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정의되어야 하고, 각자의 내가 만나 우리를 정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하건대 사랑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용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사전적으로 콤플랙스는 마음속 은연중에 존재하는 무의식일 뿐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난 이상, 나를 살아가는 이상, 스스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돌봐줘야 한다. 최초의 관용이자 최후의 사랑인 것이다. 그렇게 나를 향해 빚어낸 사랑이 너를 향하고, 우리를 비추며, 세상을 밝히는 거다.


구태여 스스로에 못난 이름을 붙여주지 말자.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 그러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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