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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Sep 30. 2023

25km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좀체 이불 밖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나로서, 2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알람소리는 퍽 괴로웠다. 그렇게 침대를 기어 나와 책상에 앉아서는 성경도 읽고, 한 두자 끄적이며 에둘러 잠에서 벗어난다. 대충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하고 집밖으로 나오면 된다. 그렇게 하루가 또 시작된다.


바리스타가 되겠노라 떵떵거리며 하던 일을 그만뒀다. 어찌어찌 커피를 배우고선 이제 일을 구해야 한다. 가진 거라곤 자신감밖에 없었던 터라, 그마저도 잃어서는 안 된다 되뇌며 스스로를 속였다. 다 잘될 거라고,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에 걸음을 내디뎠다.


온라인에서는 경력하나 없는 내 이력서를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거라고, 발로 뛰며 일을 찾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하루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일주일이면 도시 대부분을 다 돌 수 있다. 100장이고 200장이고 눈에 보이는 카페마다 이력서를 돌리는 거다.


8시 30분, 첫 번째 카페가 눈에 보인다. 막상 들어서려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겁이 난다. 저 안에서 샷을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가 장승처럼 크게 느껴진다. '하기 싫음'이 몰려온다. 그렇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못한다. 잠깐이 두려워 평생 남을 후회를 남기지 말자 다짐하고선 대차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How are you?'라며 밝게 인사를 건네준 바리스타에게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없어서 'Good'이라 말한 게 전부다. 그러고선 다짜고짜 사람 구하냐 물어보고선 이력서를 건네고 도망치듯 나왔다.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다음 카페로 향한다. 또다시 도망치듯 나온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직접 커피를 만들어보라는 카페도 있었다. 다만 사람은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카페로 넘어가자.


전철역 밑에 골목 하나가 있었다. 카페인줄 알고 들어간 곳은 커피를 함께 파는 레코드가게였다. 어쨌거나 말을 걸었다. 덩치가 큰 자메이카 사람처럼 보이는 남자는 내 이력서를 보고선 라떼 한잔, 카푸치노 한잔을 만들라고 했다. 너무 느리다고 한 소리를 듣고서는 커피 한잔 얻어마시고 나왔다. 그렇게 또 길을 나섰다.


닥치는 대로 들어갔다. 커피도 만들고, 한잔 얻어마시고, 거절도 당하고, 지적도 받으면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어느샌가 더 굳어졌고, 죽을힘을 다해서 끝까지 가야겠다는 확신만 남았다. 치기 어린 객기라 회의감이 들 때면 적어도 후회는 남기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날 25Km를 걸었다. 17군데 카페를 돌았다. 이력서 13장을 냈다.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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