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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Dec 10. 2023

호들갑

나이를 먹는 것에 큰 거부감은 없다만, 연말이 되면 마음이 항상 조급해진다고 해야 하나, 괜히 불안하고 집중도 잘 안된다. 뭐 연말 분위기가 다 그런 건지, 한껏 들뜨고 어수선한 마음에 다들 이런저런 방식으로 지난 시간을 회고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듯하다.


작년도 아마 올해와 비슷했다. 미뤄뒀던 글쓰기도 다시 시작하고 유튜브에 영상도 올리겠다 다짐했다. 곧 떠날 워킹홀리데이도 열심히 준비했지. 생각해 보면 일 년은 참 긴데, 어째서인지 12월만 되면 '벌써'라는 단어를 붙이고 다니는지. 아마 괜한 아쉬움일 것이다. 어쨌든 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 마음속 잠들어 있던 미련 혹은 후회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한다.


'호주에 좀 더 있을 걸 그랬나', '복학을 해야 하나', '나중에 뭐 먹고살지' 등등 사소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실존적인 정체성을 쥐고 흔들어대는 걸 봐서는, 아, 마음먹기 나름이구나. 고민의 크기는 곧 마음의 넓이구나.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겠다 생각했다. 우선 그렇게 일단락 지었다.


'불안'

불현듯 찾아오는 불청객인 듯 하지만 불안에도 시기는 있더라. 나에게 있어서는 그게 연말인 것 같다. 어떻게든 처음 세워둔 계획에 맞춰서 달려온 일 년인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것. 끝과 시작을 동시에 마주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뭐, 괜한 호들갑이기도 하다. 나는 마음이 분주하면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습관이 있는데 그게 장소를 가리는 것 같진 않아서 좁은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나를 부모님은 퍽 귀찮아하신다. '또 호들갑이네' 이런 식이다.


'호들갑'

슈퍼호들갑보이인 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 긴장을 하면 똥도 제대로 못 싼다. 어렸을 때는 수영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엄마를 찾으며 수영장을 뛰쳐나온 적도 있다. 호들갑은 내 삶의 전반을 나와 발맞췄다. 뭐랄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예민하다고 해야 하나, 불안함을 자주 느끼곤 하는데,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호들갑정도로 치부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연말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도 비슷한 거다. 사실 엄청 사소한 건데 마음이 분주하면 세상 모든 게 엄청 커 보이고 나만 작아 보인다. 마음의 크기도 작아지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강요하며 변화를 모색한다. 갑자기 잘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할까 고민한다던가.. 그런 것들이다. 내 삶이 품고 있는 것들을 짐처럼 여기기 시작한다. 도전하는 것과 도망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뭐 이런 호들갑을 떨면서 연말을 보내는 편이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열흘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금 정신을 차린다. 불안인지 호들갑인지 나름의 분주함을 비집고 낡은 생각들이 허물을 벗으며 새로운 일 년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슬슬 내년이 기대가 된다.


'기대'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생각한 만큼 만족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호주도 잘 다녀왔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커피도 배웠다. '바리스타'라고까진 못하겠지만 '바리스'정도는 되지 않을까. 글도 꾸준하게 썼다. 글을 더 잘 쓰게 되었는지는 읽어주는 사람이 판단할 일이고, 다만 정말 꾸준하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뚜렷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씨앗을 뿌렸던 한 해가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사사로운 것일지라도 나만의 서사를 만들자고 다짐했던 한 해였는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부쩍 재미있어진 요즘을 돌아보면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다. 모쪼록 내년을 기대할 만큼의 씨앗을 뿌린 한 해였다고 기억하기로 했다.


구태여 불안을 감출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양껏 호들갑을 떨고 정신을 차리면 마음은 가라앉고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얻으리라 믿는다. 이제 막 먹구름이 겐 하늘이 더 이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나아가는 발걸음도 더 가벼워진다. 내가 품고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기대를 한다. 더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적고 싶은 글도 많고, 해결하고 싶은 일도 많다만, 삶의 모든 부분에 일거수일투족을 힘쓰며 살아가기보단 지나간 일은 그런대로 덮어두고, 시간에 잠시 기대어 다가오는 내일로 시선을 돌리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어김없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또 배운다.


올 해도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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